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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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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영국에선 개(犬) 팔자가 상팔자다. 개에 대한 영국인의 사랑은 그만큼 끔찍하다. 돈도 아끼지 않는다. 영국의 처칠 보험사가 올해 공개한 조사자료에 따르면 영국 성인 한 명이 10년 동안 개 한 마리를 기르는 데 쓴 돈은 많게는 3만1840파운드(약 5660만원), 적게는 2만998파운드(약 3730만원)다. 그러니 개에겐 영국이 천국이다.

하지만 개에 대한 영국인의 취향은 제법 까다롭다. 사람의 품격을 재듯 견격(犬格)을 따진다. 런던의 애견단체 케널 클럽(Kennel Club)은 개의 품종, 사육 환경, 유전질환 등을 일일이 살핀 뒤 점수를 매긴다. 13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이 클럽이 인정하는 개는 곧 명견(名犬)이 된다. 그에 대해선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그런 케널 클럽이 5월 10일 진돗개를 독립 품종으로 받아들였다. 이젠 진돗개도 콜리(영국).셰퍼드(독일).푸들(프랑스)처럼 고유의 이름으로, 세계 어디에서든 명견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진돗개는 총명하다. 훈련시키지 않아도 대소변을 가릴 줄 알고, 음식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약과다. 심지어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진도의 모든 개가 일제히 바다 쪽을 향해 요란하게 짖어댄 일이 있었는데 다음날 그쪽에서 왜구의 배가 몰려들더라는 얘기가 한 예다.

진돗개는 도리를 아는 동물이다. 1993년 대전으로 팔려간 백구가 7개월 뒤 300㎞ 이상 떨어진 진도를 제 발로 찾아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주인 할머니 품에 안긴 일화는 유명하다. 진도군 돈지마을에 있는 백구의 동상은 그걸 기린 것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얼마 전 태어난 진돗개 강아지 7마리를 분양하고 싶다고 미니 홈피를 통해 밝혔다. 그러자 열린우리당 당직자들이 "명견을 활용해 이미지 정치를 하는 건 진돗개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박 대표의 강아지 분양이 과연 시빗거리가 될 만한 것이었을까. 설사 박 대표가 이미지 정치를 하려 했다고 해도 여당이 꾸짖을 자격이 있을까. 그간 이벤트 정치로 재미를 더 많이 본 건 여당이 아니었던가.

정기국회 회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여당은 엉뚱한 일에 한눈을 팔지 말았으면 좋겠다. 진돗개처럼 총명한 눈으로 예산안.세법안 등을 살피고, 그걸 민생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처리하는 게 여당의 도리가 아닐까.

이상일 국제뉴스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