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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 - 개인의 선택인가, 사회적 압박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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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의 외모 지상주의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며 "이 같은 성형 풍조는 '개인의 선택'을 가장한 사회적 강압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20~30대들이 보는 성형 열풍의 사회적 의미.문제점.대안을 들어봤다. 성형수술한 3명의 대학생과 성형 반대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여성단체 활동가 및 이미지 컨설팅 업체 원장 등 20~30대 5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김대원=고등학교 1학년 때 코에 대한 콤플렉스가 갑자기 생겼다. 거울을 보는데 내 코가 너무 커 보였다. 그 뒤로는 사람을 만나도 코만 눈에 들어왔다. 대학생이 되면 성형수술을 하기로 마음먹고 성형 카페에 가입해 각종 정보를 모으며 계획을 짰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휴학하고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달 전에 수술했는데, 부기가 빠지면 바로 입대할 예정이다. 군대 갔다와서 복학하면 스케줄이 딱 맞다.

▶허재호=중학교에 입학한 뒤 친구들에게서 개그맨 닮았다는 놀림을 종종 들었다.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대학에 들어온 뒤 친한 친구인 대원이가 같이 성형하자고 해 함께하기로 했다.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휴학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의 주유소에서 4개월 동안 기숙하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쌍꺼풀과 콧대를 세우는 수술에 모두 600만원이 들어갔다. 부모님도 멋있어졌다며 좋아하시더라.

▶신정화=우리 집은 모두 다섯 자매인데, 원래 쌍꺼풀이 있는 언니 한 명만 빼고 모두 쌍꺼풀 수술을 했다. 부모님도 당연한 걸로 아시고 수술 비용을 대주셨다. 나는 1년 반 전에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 지금도 예쁘다고 아주 좋아하신다. 친구들도 쌍꺼풀 수술은 성형이 아니라 미용 정도로 여기며 많이 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선뜻 했다.

▶정은지=성형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요즘 사람들, 만나면 하는 인사가 '얼굴 부었다' '살쪘다' '살 빠졌다' '예뻐졌다' 아닌가. 외모에 대한 언급이 안부인사처럼 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로부터 전혀 영향받지 않는 사람이라든지 다른 분야에서 자존심을 잔뜩 쌓아 놓은 사람이 아닌 이상은 성형 욕구를 참을 수 없다.

▶신=콤플렉스에 시달리다 수술을 결심한 건 아니다. 친구들은 쌍꺼풀 없는 내 눈을 보고 "눈만 좀 하면 예쁘겠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걸 언어폭력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생각해 주는 충고라고 생각했다.

▶장소영=나는 이미지 컨설팅을 하면서 되도록 성형하지 않고 자신의 매력을 찾아 만족할 수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주는 쪽으로 상담해 준다. 재미있는 건 성형전문의와 상담하다 오히려 "원장님은 턱을 좀 깎으면 좋겠네요"라는 말을 들었다는 거다. 한번도 턱 깎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뒤로 혼자 집에서 거울을 보며 턱을 가려보고 '진짜 깎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회의 '지적'이 개인에게 '성형 중독'을 부르는 것 같다.

▶김=고등학교 1학년 때 몸무게를 두 달 만에 20㎏ 정도 뺐다. 이렇게까지 살이 찐 게 충격이었고, 온전히 나를 위해 살을 뺐다. 그런데 얼굴살까지 빠지니까 이제 코가 커보였다. 그래서 성형을 결심한 것이다.

▶허=내가 어릴 때부터 이 친구를 아는데 아무도 코를 가지고 심하게 놀리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 "내 코 이상하지 않아?"하고 물어서 친구들이 그제야 보고 그렇다고 대답하는 정도였다. 우리가 수술한 건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만든 콤플렉스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정=성형은 찬반을 가를 수 있는 주제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성형으로 대표되는 '몸 통제'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열풍이다. 요즘에는 할머니들도 팔뚝 살 빼는 얘기를 한다. 그 연령에서까지 몸을 괴롭힐 생각을 하고 20대 여성들은 아직 생기지도 않은 주름살을 없애는 시술을 받는다는데, 과연 이것이 개인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장=내가 걱정하는 것은 어린 친구들이 매스컴.사회의 영향으로 너무 일찍 성형을 결정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것이다. 이제 스무 살인데 나중에 군대라도 다녀오고 나면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지 않을까?

▶김=어리긴 하지만 성형은 고등학교 1학년부터 생각해 판단한 것이다. 쉽게 변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남들과 똑같아지고 싶은 생각 때문에 성형한 건 아니다.

▶장=사람들은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외모와 장점에 집중하지 않는다.

▶신=성형한 사람들이 전부 자신의 얼굴을 부정하며 수술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옛날 사진을 다 가지고 있다. 큰 거부감이 없다.

▶허=어느 정도 인정한다. 일본 연예인인 기무라 다쿠야를 좋아하는데 그 사람 사진만 보면 나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수술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은 내 눈과 코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입술이 너무 두껍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입굴이 섹시하고 매력 있다. (다들 웃음) 입술이 아니라 눈과 코를 고친 이유는 남들이 단점이라고 하는 입술에는 만족하고 눈과 코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디자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여성민우회에서는 복지부와 연계해 성형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옆 친구에게 쪽지를 주고 서로 매력을 찾아 적어 보라는 교육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자기를 다시 보게 되고 자긍심을 갖게 된다. 개인에게 성형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교육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신=사회가 성형을 권하는 면은 있다. 취업 때도 외모를 중시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장=성형으로는 가능할까?

▶신=가능하다고 본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공부 잘하는 애들은 외모가 별로인 경우가 많았다. 친구들끼리 "나도 저렇게 생겼으면 공부 열심히 했을 거야"라는 말도 많이 했다. 정말 다른 능력이 있다면 외모가 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도 보상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장=연예인은 누구를 좋아하나?

▶허=원빈.

▶장=하지만 장동건·원빈은 오히려 '너무 잘생긴 얼굴이 콤플렉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들이 노력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매력을 가질 수 없었다. 능력으로 외모를 커버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매력을 발굴하는 노력이 제일 중요하다.

▶허=물론 성형으로 연예인들과 똑같아지고 싶은 생각을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매력은 외모가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김=내가 아는 친구는 사진 찍는 일에 지원했는데도 외모 때문에 취업하지 못했다. 능력이 있더라도 외모가 뒷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외국어 능력, 자격증 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력이다. 평가받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지만 외모를 고치면 반응이 바로바로 온다. 바로 "예뻐졌다"는 소리를 듣기 때문에 청소년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강한 유혹을 느낀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성형하라'는 메시지를 계속 받고 있는 셈이다.

정리=김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