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상호투자 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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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와 민정당이 동일기업군 내의 기업들이 서로 투자하거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을 막기로 한것은 상법상 명문화된「자본충실의 원칙」(Grundsatz der Bindung des Grundkapitals) 을 한층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따라서 이런 정책방향은 적절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동일기업군 내의 상호투자나 주식보유로 자본축적 내용을 실질 이상으로 조작하여 기업금융을 확대하거나 타기업을 사들이는 행위를 기업윤리의 측면에서 비난하곤 한다. 물론 실력 이상의 가공적인 위장자본으로 기업 군을 확장하거나 금융을 독점하는 것을 기업경영 이전의 문제로서 다룬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으로는 기업이 가장 먼저 이행해야할 상법상의 자본충실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 국민경제의 바탕을 불안정하게 하고 그것이 보편화할 경우, 기업신용도의 저하를 가져와 경제전반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10억원의 자본을 가진 두 기업이 10억원씩의 상호출자를 한다면, 두 기업의 실질적인 자본인 20억원이 40억원으로 불어나고 한번 더 재주를 부릴 때는 80억원으로 둔갑한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상호출자의 폐단은 그만큼 큰 것이고 이는 기업윤리 면에서 측정할 수 없는 경제적 손실을 결과한다.
그래서 현행 상법은「자본의 3대 원칙」을 반영하여 각각 해당 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①자본확정의 원칙 ②자본 유지(충실)의 원칙 ③자본 불변의 원칙이다.
「자본확정의 원칙」은 회사의 성립, 또는 증자의 경우, 자본액이 일정하고 그 총액에 대한 주식, 또는 출자의 인수가 확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정관에「회사가 발행할 주식의 총수」,그리고 「회사설립시 발행하는 주식의 총수는 발행할 주식 총수의 2분의 1이상」 (상법289조)을 규정토록 강제하고있다.
「자본유지」의 원칙은 회사로 하여금 항상 자본액에 상당한 재산을 보지토록 하는 원칙이다. 주식의 액면미달발행의 제한(상법 330조), 주식 납입에 관한 상계금지(334조), 법정준비금의 적립(458∼460조) , 이익배당의 제한(462조) 등의 규정이 있다.
「자본불변」의 원칙은 확정된 자본액을 임의로 감소하지 못하도록 한 원칙이다. 자본감소의 결의나 방법과 절차를 엄격히 규정한 것은(상법438∼446조) 만약 자본자체를 마음대로 감소할 수 있게 하면 자본충실의 원칙 자체가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충실의 원칙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채권자나 종업원이 보호를 받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기업에의 출자자나 종사원이 일방적인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자본을 충실하게 해야만 한다. 기업의 기본재산이 부실하다면 기업경영도 부실하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동일기업군에서 알맹이 없는 상호투자를 감행한다면 충실의 요건을 불충실하게 할 위험이 있다.
이번에 정부와 민정당이 상호투자를 금지토록 하자고 의견을 모은 것은 충실의 요건을 충실하게 하자는데 뜻이 있으므로 거론되고 있는 상법 개정안에 추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민경제활동 내용이 바뀌는데 따라 기업행태에도 명백한 위법은 아니지만, 법의 미비점을 이용할 소지는 발생하게 된다. 자본충실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내외법원의 판례는 무수히 있다. 그러나 판례나 관행으로 규제하기 어렵게 되면 상법에 관계 규정을 명문화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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