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칼럼

에덴 동쪽의 울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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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난자 취득이 매매냐, 기증이냐의 시비는 사소한 것일지 모른다. 기증자에게 150만원을 주면 기증이고, 500만원을 주면 매매인가? 허준의 스승이 자기 몸을 해부용으로 바치듯 연구원이 난자를 제공한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여기에 상업주의.민족의식까지 혼합돼 버렸다. 줄기세포가 성공하면 경제가치는 반도체보다 몇십 배에 달한다고 한다. 또 황 교수 본인의 말대로 "줄기세포마다 메이드 인 코리아 도장을 찍고 싶다"고 할 정도로 민족 자부심을 올려줬다. 시비 거는 외국인들에게 "우리는 난자 취급에 너그러운 문화인데 까다로운 서양 기준을 적용시키는 게 문제"라는 반응에서부터 "시기심 때문" "강대국이 엄청난 특허를 빼앗으려는 음모"라는 말까지 나온다. 매달 한 번씩 나오는 난자를 고귀한 실험에 사용하는데 무슨 제약이 그리 많으냐. 그러니 수백 명의 여성이 "내 난자를 사용하라"고 서약하고 나섰다.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러나 배아줄기세포라는 것이 무엇인가. 난자에서 핵을 빼고 그 자리에 체세포의 핵을 넣어 난자와 정자가 만난 것같이 인간 배아를 만드는 것이다. 이 단계를 생명으로 보느냐, 않느냐는 의견이 갈린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나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이 단계부터 이미 생명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배아 복제를 반대한다. 이 단계의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면 아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게 복제 양 둘리이고 복제 개 스너피이다.

그러니 인간 복제는 이제 눈앞에 닥쳤다. 이제 복제를 하느냐, 않느냐는 과학자의 의지에 달렸다. 복제 인간의 출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다. 또 이런 기술은 생명공학적 대량살상무기로도 발전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나치를 패망시키기 위해 핵폭탄을 만들 것을 미국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그러나 뒤늦게 핵폭탄이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1955년 8명의 과학자, 버트런드 러셀 경과 함께 핵무기 반대성명을 냈다. 그는 "일반인들은 핵 전쟁의 의미를 잘 모른다. 한두 개의 도시가 파괴되는 것으로 안다. 그것은 인류의 종말을 말한다. 인류를 생각한다면 핵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난치병 치료라는 목적이 있지만 진전 여하에 따라서는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 것이 배아줄기세포 연구다. 더구나 이는 핵무기보다 더 쉽게 얻을 수 있다.

과학자들의 연구 원동력은 호기심이다. 과연 복제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극복할 수 있을까. 여기에 공명심.경제.정치적 동기 등이 결합될 때 어떻게 될까. 황 교수도 윤리 문제가 불거진 뒤에야 "당시엔 그저 일과 성취 외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과학자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향해 숙명적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실험실 구석에서 몇 사람에 의해 벌어지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인류에 대한 사랑과 인간생명에 대한 경외심 없이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윤리 없이는 연구는 인류 파멸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 스스로의 생명윤리의식이 중요한 것이다. 황 교수의 사소한 거짓말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윤리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만의 기준으로도 안 된다. 이는 인류 전체의 미래와 연관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인류가 재앙의 길로 들어서는가, 아니면 신이 준 이성과 지혜로 더 발전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그 사람(아담과 이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느니라."(창세기 3:24) 생명 복제는 이 신성한 울타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닐까. 난치병의 치료는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러나 이 연구가 인류 파멸로 연결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래서 엄정한 생명윤리, 세계적 공동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문창극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