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선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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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문외한으로서 내가 알고있는 얄팍한 상식에 따르면 은행은 「신용」을 판매하는 곳이다. 즉 화폐자본을 수단으로하여 신용의 바탕위에서 기업성을 살려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라고 알고있다. 따라서 은행은 예금주에게 맡긴 돈을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신용을 줘야하고, 대출을 원하는 고객에게는 필요할때 돈을 빌어 쓸 수 있다는 신뢰감을 줘야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 나타나는 은행상은 이러한 「신용성」과는 거리가 먼 일그러진 모습을 하고있다.
비단 근년에 우리를 경악시켰던 일련의 금융사건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의 현실을 외면한 금융정책은 일반국민과 은행을 신뢰관계로 묶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23일 은행금리가 소폭으로 조정되었다. 그러나 금리를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인상해 줄 것을 기대했던 일반국민은 무력함에서 오는 실망감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고있다.
생각해보면 현금의 은행금융정책처럼 모순과 불합리고 가득찬것도 별로 없는것 같다. 한푼을 쪼개쓰는 서민의 알뜰함이 모여 은행의 운영자금이 되지만 은행으로부터 가장 큰 몫의 혜택을 받는 계층은 우리사회의 불과 몇%에 지나지 않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금력과 권력, 그 위에다 대기업편애의 경제정책에 힘입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은행으로부터 돈을 꺼내쓸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하경제가 활개치고 있는 한 국제우대금리 이하의 수준에 있는 은행돈을 많이 대출 받을 수록 당사자는 그만큼의 이권수혜자가 되는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반국민은 낮은 금리때문에 예금에서도, 그리고 더높은 은행문턱 때문에 대출에서 수혜권 밖으로 밀려난다. 더우기 요즘에는 재형저축자조차도 기예금액의 3분의1 정도밖에 대출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정부에서 즐겨 사용하는 선진화가 은행에서도 이루어져 서민을 위한, 일반대중을 위한 은행이 되어주기 바란다. 그리하여 절실하게 돈을 필요로 하는 선량한 국민이 더 이상 독사와 같은 고리대금없자의 표적이 되는 일이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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