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한달] 프랑스 소요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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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청년들의 소요사태는 가려졌던 프랑스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많은 상처를 남겼다. 사진은 소요사태 당시 소방관들이 차량 방화를 진화하는 모습. [중앙포토]

22일 프랑스 전역의 범죄 다발지역에서 경찰.헌병 합동으로 대대적인 범죄자 소탕작전이 실시됐다. 대상 지역은 대부분 한 달 전 소요사태가 발생한 곳이었다. 평소 이들 지역에서 지하경제를 주무르며 각종 범죄행위를 저질러온 인물들에 대한 일제소탕이었다. 이날 하루 작전으로 조직범죄단 보스를 비롯해 80여 명의 범죄 용의자를 체포했다. 프랑스 경찰은 그동안 분석한 비디오 테이프 등 자료를 토대로 소요에 가담했던 젊은이들도 체포했다. 총기류와 대마초.헤로인.코카인.엑스터시 등 수십㎏에 이르는 환각물질도 적발했다. 작전에는 경찰과 헌병 외에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2002년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기 위해 만든 특별조직인 '지역개입부대(GIR)'도 동원됐다.

지난달 27일 두 무슬림 청소년의 죽음으로 촉발됐던 소요사태 이후 프랑스가 달라졌다. 사태 발생 이후 한 달을 맞아 그간의 변화를 점검했다.

◆ 강경해진 공권력=소요사태 이후 프랑스 공권력이 달라졌다. 교통 단속에 주로 동원되던 경찰이 우범자들에 대한 일제소탕 작전을 정례화할 계획이다. 소요사태가 터지면서 경찰의 안이한 태도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특히 경찰 노조가 그동안 우범지역 순찰을 거부해왔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경찰의 강경 변신 뒤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이 버티고 있다. 사르코지 장관은 이번 소요사태 진압을 진두지휘하면서 시종일관 강경대응으로 맞섰다. 사르코지는 16일 의회에서 비상사태 연장안이 통과되던 날 "폭력 위에 미래가 건설될 수는 없다"며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후 소요 주동자는 물론 참가자에 대해서도 무조건 체포령이 떨어졌으며, 통금이 실시됐다.

◆ 이민정책도 손질=소요사태의 주동자는 이민 2세들이다. 이에 따라 사태가 악화된 사회적 배경은 이민정책의 실패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프랑스 정부는 그동안 이민정책이 너무 느슨했다는 자체 평가에 따라 대대적인 정책 손질에 들어간다. 29일 총리실에서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한 관계부처 합동위원회가 열린다.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가 주재할 이날 회의에선 이민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들이 논의될 것이라고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가 22일 보도했다.

강경파 사르코지 장관도 이민정책 손질에 가세하고 있다. 내무부 고위 관료들로 구성된 이민대책팀이 23일 첫 모임을 열었다. 이 회의에서는 현재 '줄이민'을 유발하는 이민자의 '가족 재결합'규정을 손질하는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가족 재결합 규정은 이민 노동자가 장기체류 허가를 받을 경우 가족을 프랑스로 부를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내무부 관리들은 의원들을 대상으로 이민법 개정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있다.

◆ 채찍과 함께 당근도=드 빌팽 총리는 소요사태가 정점에 달했던 7일 교외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최근 몇 년간 줄인 사실을 반성하면서 이를 다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또 소외지역 청소년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의 용기를 북돋워줘야 한다"며 "중간에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들은 16세가 아닌 14세에 직업 견습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드 빌팽 총리는 이 밖에 ▶반차별기구 설치▶교외 저소득층을 위한 일자리 2만 개 제공▶교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단체에 1억 유로 지원▶세금감면 혜택이 주어지는 15개 특별 경제구역 창설 등을 발표했다.

◆ 소요사태가 남긴 상처=전국 300여 개 도시가 영향을 받았다. 경찰과 헌병 1만1500명이 진압에 동원됐다. 파리 북동쪽 교외에서 61세 노인이 소요 가담 청년에게 폭행당한 뒤 사흘 만에 사망했다. 주민.경찰관.소방관 115명 이상이 부상했다. 3000여 명이 체포돼 422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보험 업계에 따르면 최소 2억 유로(약 2448억원)의 보험료 지급 부담이 발생했다. 더 심각한 상처는 구겨진 프랑스의 자존심이다. 프랑스가 더 이상 톨레랑스(관용)의 나라임을 자랑하기 힘들게 됐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프랑스 소요사태 일지

▶10월 27일=클리시 수 부아에서 경찰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두 명의 무슬림 청소년 부나 트라오레(15)와 지에드 베나(17)가 변전소에 숨었다가 감전사. 이 지역 무슬림 젊은이 수백 명이 차량 23대를 불태우고 상점 등을 공격하면서 밤새 경찰과 투석전.

▶10월 29일=주민 500명 침묵 시위. 야간에 폭력사태 재발

▶10월 30일=경찰 최루탄이 이슬람 사원에 발사돼 무슬림사회 분노 증폭

▶11월 2일=파리 교외 22개 소도시로 소요 확산

▶11월 4일=청년들 차량 750대에 방화. 현장서 200여 명 체포

▶11월 5일=소요사태 열흘 만에 파리 중심가에서도 방화사건 발생. 전국에서 차량방화 1295건

▶11월 6일=시라크 대통령 특별대책회의 주재. "공포를 확산시키려는 사람 처벌" 경고

▶11월 9일=비상사태 발동

▶11월 17일=경찰, 소요사태 종료 선언

강경진압 진두 지휘 사르코지 내무 인기
소극적 태도 보였던 시라크는 인기 추락

프랑스 소요사태는 정치인의 운명도 갈랐다. 니콜라 사르코지(사진) 내무장관은 떴고 자크 시라크(下) 대통령은 추락했다. 사르코지 장관은 소요 참여 청년들로부터 사태의 '원인 제공자'로 비난받던 인물이다. 내무장관 취임 뒤 우범지역 단속을 강화하는 바람에 사태가 확대됐다는 비난이었다.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 단호한 대응으로 정통 프랑스인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소극적인 자세로 국민 앞에 나서기를 꺼렸던 시라크 대통령은 원성을 샀다.

사르코지 장관이 주목받는 것은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집권 대중운동연합(UMP) 총재다. 내무장관직은 두 번째로 맡았다. 3년 전 첫 취임 당시에도 '범죄와의 전쟁'을 이끌어 범죄율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소요사태가 터지자 치안을 책임지는 내무장관으로서 강경 진압을 진두 지휘했다. 그 과정에서 사르코지 장관의 지지도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는 최근 "소요사태 이후 사르코지의 강경대응을 지지한다는 사람이 응답자의 68%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반면 시라크 대통령은 사르코지의 그늘에 가렸다. "소요사태가 정점으로 치달을 때까지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난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입소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의 태도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54%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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