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에게 복종하라" 행동강령 만든 대학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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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원은 총장에게 복종하라. 집을 이사했으면 총장에게 신고하라. 단체행동은 하지 마라.” 부산의 사립대학교인 경성대가 지난 1일자로 시행한 교직원 행동강령 중 일부 내용이다. 교수와 일반 직원들에게 모두 적용되는 이 같은 강령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학 안팎에서는 학교가 구성원들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경성대는 지난달 13일 교직원 행동강령을 새로 마련하고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논란이 된 부분은 행동강령 중 ‘제2장 기본행동강령’과 ‘제7장 위반행위의 신고와 진상조사’ 등이다. 교직원은 총장에게 복종하고, 단체행동을 금지하며, 강령 위반자를 신고하라는 등의 내용이다. 제10조는 교직원의 주소지를 거주지를 제한하고 있다. 교직원은 부산시 근교에 주소지를 둬야 하며, 주소지를 변경한 경우 증빙서류를 갖춰 총장에게 신고하도록 돼 있다.

제11조는 총장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 “교직원은 총장 및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교직원은 교내외를 불문하고 교직원 및 본교 학생에 관한 돌발 사건을 목격하거나 선행 또는 불미스런 정보를 입수하였을 때 총장 또는 소속 상관에게 즉시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당장 학교 구성원들의 집단행동을 금지하는 조항이 교수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제17조와 제18조는 “교원은 정치운동을 위하거나 집단적으로 수업을 거부하기 위해 학생을 선동해서는 안된다” “교원은 노동운동이나 그밖에 관련 직무 외의 일을 위한 단체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학교는 강령을 실제 현장에서 적용시키기 위해 ‘행동강령책임관’을 별도로 두는 내용까지 강령에 담았다. 또 교직원이 강령을 위한반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책임관에게 즉시 신고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책임관은 진상조사를 통해 총장에게 필요한 조치를 건의하게 된다.

이 같은 강령에 대해 교수들은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돼야 할 상아탑 내에서 오히려 구성원들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며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직원들을 통제하기 위해 강령을 만든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학교의 지나친 간섭”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직원은 “강령 위반자를 신고하도록 한 부분은 결국 직원들이 서로를 감시하라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경성대의 이번 행동강령은 2011년부터 불거진 교수협의회와 학교(재단)의 갈등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당시 재단과 총장의 학교 운영 방식에 반발한 교수들이 총장 탄핵 등을 주장하자 학교 측은 해당 교수들을 파면 조치하면서 내홍을 겪었다. 학교 측은 지난해 학칙을 개정해 교수협의회가 학칙기구로서 갖고 있던 권한을 모두 없앴다. 교수협의회를 사실상 와해시킨 셈이다.

이 같은 행동강령에 대해 경성대 측은 “구성원들의 윤리의식을 높이고 각종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건전한 학원 풍토를 만들기 위한 것이지 교직원들을 옭아매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부산=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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