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 기업의 기구 감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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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 투자기관의 대폭적인 기구 개편이 각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비단 당사자들만의 관심사라기보다 납세자, 소비자의 일반적 관심사도 된다.
정부 투자기관의 효율화·경영 개선은 곧바로 납세자와, 이들 업체가 제공하는 공공 성격의 물자와 서비스 수요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그것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그동안의 현실은 만족스럽지 못해 부실과 난맥에 빠져든 국영업체가 적지 않았다.
때문에 정부가 오랜 준비 끝에 마련한 「정부 투자기관 관리 기본법」의 제정을 보고 그것이 하나의 크나큰 전환을 이룩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이 법이 지향하고 있는 여러 가지 목표들, 예컨대 사장을 중심으로 한 전문 경영 체제의 확립이나 보다 객관화된 평가제도 확립, 공익성을 보장하기 위한 이사회 기능의 개편 등이 모두 만성적인 국영기업 비능률을 쇄신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고있다. 다만 이 같은 법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조직과 기능, 운영 방식을 어떻게 업체별로 구체화하느냐에 따라 모처럼 제정한 기본법의 취지가 살아날 수도 유명 무실해질 수도 있다고 본다.
국영 업체의 비능률을 요인별로 대별해 볼 때 주로 인사의 난맥, 조직의 비대화, 경영의 방만 등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문제되어온 인사의 난맥은 주로 정치권력이나 행정권의 영향력이 부당하게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국영기업체가 퇴직 공직자의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질 만큼 인사의 무원칙은 일반화되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관료적 인사 풍토가 국영업체의 무사안일, 방만한 경영, 관료적 운영의 가장 큰 원인이 되어왔고 나아가서는 조직의 비대화까지 몰고 온 장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70년대 후반기 이후 민간 부문의 발전과 경영 현대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동안 국영기업은 대조적으로 침체하고 구태의연한 경영기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이런데서 연유되었다. 공공성 높은 재화와 서비스는 민간의 그것에 비해 월등히 높은 질과 효율성·경제성을 요구하는데도 사정은 그 반대였다.
새 기본법이 사장 중심의 전문 경영체제 확립을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은 이런 사정에 비추어 바람직한 방향 설정이라 하겠다. 오랫동안 현업을 익혀온 전문가들이 경영과 집행의 책임을 맡게 될 때 비로소 국영 업체의 정상화는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새 기본법이 실무 책임자를 중심으로 한 본부장 제도나 실무 이사 제를 도입하려는 구상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 하겠다. 이런 사업부 중심의 조직 개편은 우선 실무와 현업에 밝은 전문가들에게 의욕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함으로써 책임 경영 제에 크나큰 진전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이 경우 이상적으로 비대한 상부 조직의 대폭적인 개편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진통은 국영기업 능률화라는 더 큰 명제의 긴요 성과 비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대폭적인 조직 개편으로 생기는 일시적 충격을 흡수할 완충 장치도 함께 고려하는 여유는 필요할 것이다.
인사와 조직의 개편은 그러나 획일적으로 처리하기보다 업체별·기능별 특수성도 충분히 고려해야한다. 기능과 효율에 맞게 최적의 조직을 재구성하고 나면 경영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평가 기구와 제도, 기준의 설정이 중요한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다.
새 법과 앞으로 마련될 시행령이 고질적인 국영기업 비능률을 혁신하는 전환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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