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석의 걷다보면]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 지친 옷도 쉬어 가는 시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사무실에 들러 순례자 여권을 보여주고 등록을 마친다. 침대를 배정받고 (혹은 차지하고) 짐을 푼 다음 샤워를 하고 그날 입었던 옷을 빨래한다.

빨랫줄은 늘 빈 공간을 찾기 어렵다. 그럴 땐 가장자리 빨래부터 1㎝씩 살짝살짝 옆으로 옮긴다. 걸려 있는 모든 것을 조금씩 당기면, 딱 빨래 하나를 널 만한 공간이 나온다. 뿌듯한 마음으로 옷을 널고 돌아서면 나보다 늦게 도착한 누군가가 또 조금씩 당겨 공간을 만들곤 했다.

이렇게 빨래까지 제자리를 찾으면, 카미노 순례자들의 공식적인 일과가 마무리되었다. 그러면 비로소 따뜻한 햇빛 아래 지친 몸도 옷도 쉬는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