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일베? … 방송사 일베 합성물 사용했다가 삭제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YTN 뉴스 보도에 극우성향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의 합성물이 등장해 뒤늦게 삭제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문제의 보도는 5일 오전 ‘인류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 찾았다’는 뉴스였다. 에티오피아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하빌리스의 진화 중간 단계에 있는 인류의 화석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앵커 뒤 화면에는 일베에서 제작한 ‘일베쿠스’라고 불리는 합성 그래픽이 함께 나갔다. 이 그래픽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발달하는 과정을 나타냈지만 발달과정의 초기 2단계는 유인원 대신 술에 취해 쓰러진 남성을 넣은 합성물이다. 논란이 되자 YTN 측은 바로 문제의 영상을 삭제했다.

방송사가 일베 합성물을 사용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MBC KBS 등 다른 방송사도 과거 일베 합성물을 사용했다가 곤욕을 치른 일이 적지 않다.

MBC는 교양프로그램 ‘기분좋은 날’에서 화가 밥 로스의 사망을 전하면서 밥 로스 얼굴에 노무현 전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이미지를 내보냈다. SBS는 ‘8뉴스’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코알라를 합성한 ‘노알라’ 사진을 노출한 적이 있다. 특히 SBS는 ‘8 뉴스’뿐 아니라 ‘스포츠뉴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 ‘런닝맨’ 등 시사보도 및 예능프로그램에서 수 차례에 걸쳐 일베 합성물을 사용했다가 사과하는 일이 반복돼 비판이 들끓었다.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일베 합성물이 방송에 사용되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일각에서는 ‘방송사에서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방송사 측은 ‘급한 방송 일정에서 벌어지는 실수’라고 강조한다.

KBS의 한 관계자는 “일베 이용자들이 그래픽을 워낙 정교하게 만들다보니 실제와 구분하기 쉽지 않다”며 “그래픽 팀에서 이를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13년 SBS ‘8 뉴스’에 사용됐던 연세대 로고가 대표적이다. 일베에서 만든 연세대 로고는 연세대학교의 머릿글자 ‘ㅇㅅ’(연세)를 ‘ㅇㅂ’(일베)로 바꿨는데 인터넷 상에서는 '재학생이나 졸업생이 아니면 구분하기 쉽지 않을 정도'라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 이 로고는 연세대 출신 의사들이 운영하는 몇몇 병원 로고로도 사용되는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SBS ‘세상에 이런일이’에 등장한 일베 합성물도 마찬가지. 조선후기 대표적 화가인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에서 동자승의 위치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등장시켰다. 그림에서 바위 틈에 몸을 가린 인물이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상이다.

하지만 해당 이미지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은 방송사들의 부주의가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종합편성채널의 한 방송기자는 “취재기자가 구글에서 캡쳐한 이미지들을 모내면 그래픽 팀에서 처리하는데 이들이 모든 그래픽에 대해 일일이 진위를 확인할 시간이 부족하고, 때로는 확인할 역량이 안 되는 점도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약점을 노린 일베 회원들은 2016년 브라질 올림픽,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등 각종 주요 행사의 로고로 이미 각종 합성물을 만들어 인터넷에 유포중이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