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여·야, 행정도시법 절차적 흠결 반성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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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행정도시법은 행정수도특별법이 헌재에서 위헌으로 판정되자 그 후속조치로 입법된 것이다. 당시 헌재는 수도의 위치는 헌법사항으로서 명문화되어 있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관습헌법상 수도는 서울로 정해진 것이며, 대통령과 국회의 위치는 수도의 주요 요소가 된다는 점을 들어 행정수도특별법을 위헌으로 판정했다. 그러자 대통령과 국회를 제외한 행정부를 이전함으로써 헌재결정의 이유를 충족하는 한편 충청도민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목적하에 행정도시특별법이 만들어진 것임은 알려진 바와 같다.

그러나 국민 다수가 행정수도특별법을 문제삼았던 근본 이유는 달리 있었다고 생각된다. 즉 국민 다수는 국가안보, 국민경제 발전, 통일 등의 국가목적과는 무관하게 선거에 있어서의 표를 의식해 수도이전이 추진되고, 국민투표 등을 통해 국민 전체의 의사가 반영되는 절차 없이 수도를 이전하려고 한 데 격분한 것이다. 당시 헌재의 결정도 수도이전은 헌법개정 절차를 따르라고 표현하였으나, 그 근저에는 국민의 의사를 물어 결정하라는 뜻이 있었다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이 점에서 새롭게 시도된 행정도시법의 입법절차도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수도이전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지역의 균형발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행정부를 충청으로 이전하는 것이 과연 지역의 균형발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필요충분조건이 되는가? 수도권은 경기 위축을 부르고, 충청권에는 부동산가격만을 높임으로써 기업 유치는 물거품이 되고 지역민 간의 불균형만을 심화시킬 가능성은 없는가? 재정이 행정도시 건설에 투여됨으로써 국가재정 집행의 우선순위가 뒤틀리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의문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충분한 토론 없이 허겁지겁 행정도시법이 입법화되었다. 당시 여당은 위헌결정으로 인한 충청권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헌재결정 이유에서 명시된 점만을 피하는 법률을 입법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고, 야당은 제2의 탄핵사태와 같은 역풍을 피하려고 반대다운 반대도 못한 채 입법에 동의했다. 행정도시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국가정책적으로 타당한 것인지에 관한 토론은 생략된 채 각자의 이해 관계만을 앞세운 몰이성적인 편가르기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절차적 흠결과 국민을 분열시킨 책임은 행정도시법을 입법한 여당은 몰론 야당에도 있고, 정치권 전체가 거듭 반성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헌재의 심의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행정도시 예정지를 지정하고 보상절차에 착수했다. 헌재로선 위헌결정을 내릴 경우 발생할 파장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당 역시 헌재결정을 앞두고 소속 국회의원 전원의 연명으로 합헌결정을 내려줄 것을 요구하는 서면을 헌재에 제출했다. 사법권을 존중해야 할 정부와 여당이 재판부에 대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어쨌든 헌재결정은 내려졌다. 이제는 행정도시 건설이 수도권과 충청권은 물론 모든 국민에게 도움이 되어 기존의 국부를 증가시키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궁리해야 한다. 건설 시기는 물론 그 범위, 수행방법 등까지 원점에서 재검토해 행정도시 건설이 국민의 허리를 휘게 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제가 생겨도 다음 정권이 걱정할 일이고 나는 표만 계산하면 된다는 생각은 한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정치인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생각일 것이다.

강훈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