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의색다른세상] 빨간 팬티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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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수학능력시험 때문인지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해마다 이맘때면 추워지는 날씨를 두고 사람들은 '입시 한파' 또는 '수능 추위'라 부른다. 수험생이 많은 만큼 수능 때문에 초조한 사람도 많게 마련이다. 이런 이들은 초조해진 마음 때문에 체감온도까지 내려가 입시 한파를 더욱 실감할 것이다. 그런데 기상청에서도 자주 쓰는 표현인 '체감온도'라는 것은 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색채에는 난색과 한색 계열, 두 가지가 있다. 빨강 계열은 일반적으로 난색, 파랑 계열은 한색으로 분류된다. 이런 명칭을 두고 그저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려니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 실제로 색은 '한난'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색채학자 F 비렌에 따르면 한 식당이 실내온도를 21℃에서 24℃로 올려봤다. 그러면서 실내를 밝은 하늘색으로 치장했다. 그러자 온도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춥다는 손님들의 불평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실내를 오렌지색으로 바꾸자 이번엔 손님들이 너무 덥다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주인은 결국 실내온도를 다시 21℃로 내렸고, 그제야 손님들은 만족했다고 한다. 이 사례에서 보듯 주변 색의 변화만으로도 사람의 체감온도는 1~2℃씩 우습게 변한다. 빨강.노랑 등 난색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있을 때 사람의 체감온도는 파랑.녹색 등 한색 공간에 있을 때보다 최대 3℃까지 올라간다는 보고도 있다.

이런 현상은 인간 뇌의 활동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색은 대뇌에 자극을 주고, 그 자극은 자율신경을 움직이게 한다. 그런데 이중 난색은 교감신경을 자극시켜 체내 혈류량을 늘리고 실제로 몸을 따뜻하게 한다. 반대로 한색은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혈류량을 떨어뜨려 체온을 내려가게 한다.

난색 중에서도 특히 빨강은 이런 성질이 강하다. 따라서 빨강 벽지를 바른 방에 들어가면 5분 만에 심장이 벌렁거린다는 경우도 있다. 심장이나 혈압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현상이다. 심부전증이나 고혈압 등의 질병이 교감신경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규명된 사실이다.

빨강 속옷을 입으면 정력이 강해진다는 소문 때문에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한때 '빨강 팬티 요법'이 크게 유행했다. 역시 교감신경과 혈류량 증가의 관계를 통해 기본적인 과학적 설명이 가능한 이론이다. 심장이나 혈압에 문제가 없다면 요즘 같은 겨울철에 특히 입시 한파가 불어닥쳤을 때 생활에 응용해볼 만한 아이디어다.

이상희 컬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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