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와 배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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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파트 투기의 이상 열기가 전국을 휩쓸던 70년대 후반 누군가 『때는 바야흐로 전 국민 총 도박 시대』라고 했다.
하룻밤 새 몇 백만원이 오가는 「돈 놓고 돈 먹기」 요지경 놀음 앞에 근검·성실·절약의 시민 윤리는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그래도 정직하게 열심히 살겠다고 애쓸 수밖에 없는 많은 「개미」 서민들에게 요령껏 한목 잡아 나무 위에 늘어진 「배짱이」 투기꾼들의 모습은 깊은 좌절을, 좌절을 넘어 분노를 자아냈던 기억이 새롭다.
전기 대학 입시가 끝났다.
말 많고 시끄러운, 해마다 한차례의 열병이 올해도 지나갔다.
20일 우리 나라 모든 학부모와 수험생들이 선망하는 서울대 합격자 발표 장.
운동장 벽보판에 길게 길게 나붙은 합격자들의 수험 번호 행렬에는 하나의 법칙(?)이 발견됐다.
대부분 학과의 합격자 번호가 일련 숫자로 계속되다가 끝 부분에 가서 갑자기 몇개씩 건너뛰어 일렬 행진이 깨뜨려지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눈치를 살피다 마지막 순간에 미달·저 경쟁과에 원서를 낸 「눈치파」, 아니면 밑져야 본전의 배짱으로 인기 학과를 2지망으로 써낸 「배짱파」·「요행파」의 윤곽이다.
선 시험 후 지원의 현행 입시 제도가 시행된 다음부터 불가피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눈치·배짱 지원의 폐단은 올해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 느낌이다.
70년대 후반 아파트 투기의 「전 국민 총 도박」이 대학 입학 원서 접수 창구에서 「전 수험생 총 도박」의 양상으로 나타난게 아닌지 걱정이다.
대학 입시가 이렇게 국가적 관심사가 되는 것 자체가 우리 교육 제도의 모순이며 사회적 불 합리의 하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라면 대학 입학은 그 이전에 이미 여러 단계의 「체질」을 거쳐 결정이 되어 있어야 한다.
너도나도 모든 학령 층의 학생이 대학 문 앞에 몰리는 것 자체가 문제의 뿌리다. 자원도 자본도 빈약하기 작이 없는 나라에서 이토록 낭비 많은 교육이 행해져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해마다 수십만 고등 교육 이수자를 양산하면서 정작 건전한 「직업인」은 길러내지 못하는 어설픈 교육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할 것인가.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수 없고 학생이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과 관계없이 학력 고사 성적을 기준으로 대학과 진로를 결정하고 있는 우스꽝스런 소동을 또 언제까지 고집할 것인가. 「한강의 기적」이 우리의 남다른 교육열을 토대로 가능했다면 바로 그 교육열과 미봉의 교육 정책 때문에 그 기적을 허물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깊이 생각하고 빨리 고쳐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순간의 결정이 민족의 백년대계를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덕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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