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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역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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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주 철 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3월 들어 시간표가 바뀌었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시작한 거다. ‘운동 좀 하라’는 얘기는 질리도록 들었다.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운동 안 하는 것도 소신이냐?” 뭐 이런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숨쉬기운동과 걷기운동은 꾸준히 한다’며 버텨왔다. 불통의 나를 ‘운동’하도록 만든 전환의 계기는 무엇일까.

 믿음이 가는 후배가 어떤 운동의 장점을 말하는데 처음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몇 번의 권면으로는 미흡하다. “저랑 같이 다니시는 거 어때요?” 역시 친구의 조건은 동정, 동경이 아닌 ‘동행’이다. 마침 집 가까운 곳에 운동할 장소가 있다는 것도 결단에 힘을 보탰다.

 이제 그 운동의 이름을 밝힌다. 국.선.도. 차마 내가 그런 걸 해보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도복을 입을 때까지도 ‘그냥 따라 하면 되겠지’ 하는 안이함이 있었다. 등장한 사범은 근육질과 거리가 먼 젊은 여성분이었다. 낭랑한 목소리와 단아한 자태. 그러나 그분이 동작을 시작했을 때 난 알아차렸다. “잘못 왔구나.” 따라 한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잡념을 버리라고 하는데 도저히 그 경지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 ‘꼭두새벽에 내가 왜 이런 걸 하고 있지’ 하는 푸념이 줄기차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신병훈련소에서 고문관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살아남았는데. “지금 춤추냐?” 교관의 신기해하던 표정이 눈에 선하다. 그래도 그때는 춤이라도 출 수 있었다.

 나는 슬픔 속에서 깨달았다. “나는 ‘장애인’이다.” 그걸 늦게 알아차린 거다. 나는 나를 몰랐다. 차라리 모르고 살다가 그 상태로 죽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아니다. 모험심을 가지자. 우선 나를 객관적으로 보자. 나는 내가 이렇게 많은 근육과 관절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매일 똑같은 근육과 관절만 써왔다. 주로 입과 무릎에 몰려 있는 것들이 내 몸의 전부인 양 편애하며 살아왔다. 아, 나는 신체의 ‘회전문 인사’를 했던 게 아닌가.

 소외된 근육과 관절들은 서운해하며 보복의 기회만을 노려왔다. 차별대우를 받던 상당수는 이제 내 명령에 거역한다. 자신들을 뻣뻣하고 딱딱하게 방치한 나를 원망하며 총궐기에 나선 모양새다. 나는 소년기의 유연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정신과 육신이 중심을 찾는 그 지점을 향해 나는 내일 새벽에도 ‘고난의 행군’을 이어갈 참이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