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누가 부담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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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민 복지 연금제의 실시를 앞당기기 위한 실무 작업이 올해 중에 본격화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4년 입법된 이 제도는 그동안 경제 사회적 여건의 미성숙을 이유로 실시가 보류되어 왔던 것으로 올해부터 실무기획단을 발족, 86년까지 구체안을 확정한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인 것 같다.
두말할 필요 없이 이 제도는 의료 보험제와 함께 현대의 복지 지향적 국가들의 사회 보장시스템을 지탱하는 두 지주의 하나다. 그만큼 국민들의 관심도 높고 이해 관계가 깊다.
정부는 사회 개발을 표방한 4차 계획 때부터 이제도의 도입을 검토해 왔으나 이 제도 실시가 갖는 상징적 의미와 실질 효과는 물론 그에 수반되는 사회적 부담의 배분과 재편성, 근로 행태와 시행의 변화를 포함한 광범한 사회적 파급의 분석 등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이른바 국민적 합의를 걸러내는 과정이 미흡했다.
따라서 정부가 이 제도를 본격 도입하려면 무엇보다도 이 같은 합의를 얻어내는 충분한 협의 과정이 불가결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 복지의 장기적 과제와 목표가 먼저 제시돼야 하고 그것을 추구해 가기 위한 방법론과 사회 성원의 대체적인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전자의 경우 정부의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 실정하는 복지의 목표와 유형이 달라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저개발 상태일수록 소득 재분배와 사회 보장의 수요는 높아지는 반면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과 수단은 상대적으로 더욱 제한되어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선진 공업국들의 경험을 「학습」 할 수 있는 후발의 이점을 안고 있다. 50여년에 걸친 서구형 복지 정책의 교훈은 최근의 복지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얻어낼 수 있다. 이 들의 현황은 거의 예외 없이 「복지 실험」의 한계에 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제는 복지 그 자체의 질과 양의 문제라기보다 그 부담의 한계와 연관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세 부담률이 GNP의 50%를 넘어도 여전히 복지 지출의 해결 방안이 마땅치 않은 서구형 복지는 결국 부담의 한계 이내로 조정될 수밖에 없으며, 지금도 이미 그런 조정이 진행중이다.
따라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복지의 원형은 이 같은 서구형 망라주의 보다는 선택적 복지지향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여러 종류의 사회 보장제 가운데서도 부업 보험의 도입은 언젠가는 실현돼야 할 과제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다만 그것을 언제까지 어떤 과정으로 어떤 단계까지 실현할 것인지는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우선 현재 실시중인 의료 보험제와 제한적으로 실시중인 공무원·군인·사립 교원 연금제의 경험과 현실을 충분히 참작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금제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우선 부담금의 적절한 배분이 이루어져 있지 못하고 정부의 부담 분이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종류별로 부담과 수혜의 형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제도가 실질적인 사회 보험으로서의 실업 보험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비용 부담의 배분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목표와 수단이 서로 조화될 수 있다. 정책 목표로서의 복지가 실현 수단으로서의 균형 부담이 조화되지 않는다면 허물만 남는 명목상의 복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재정의 부담 면에서도 장기적인 재정 경직을 예방할 수 있는 최저한의 관계 설정도 필요하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철저히 검토하기 위해서는 조금한 실행보다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갖고 사회 각계의 지혜를 모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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