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으로 거듭난 '원이 엄마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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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420년 전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무덤 속에서 발견된 '원이 엄마의 편지'(사진) 첫 부분이다. 이 편지는 1998년 경북 안동시 정하동 택지개발지구의 한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미라와 함께 발견됐다.

안동국악단과 영남국악관현악단은 26일 안동시민회관에서 이 편지 내용에 곡을 붙인 국악가요 '원이 아버지에게'를 선보인다. 노래 제목은 원이 엄마가 편지에 쓴 그대로 '원이 아버지에게-병술(1586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로 붙여졌다.

작곡은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활동 중인 중국 옌볜대 박위철(47.한국음악)교수가 맡았다. 곡은 전체적으로 중간 빠르기인 중모리의 구슬픈 곡조로 만들어져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애절한 심정을 담았다. 박 교수는 "이야기를 처음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며 "긴 편지 글을 모두 소화하기 위해 일부 내용은 곡 중간에서 낭독 형식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노래는 이날 가야금과 대금.해금.피리 등 국악관현악의 반주로 안동국악단 전미경(31) 단장이 약 10분 동안 부르게 된다.

전 단장은 "400여 년 전 안동 사람들이 나눈 지고지순한 사랑을 국악에 담아 우리 곁에 두고 싶어 노래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원이 엄마의 편지는 98년 당시 고성 이씨의 문중 묘를 이장하던 중 이응태(1556~1586)의 무덤에서 나왔다. 이응태의 부인인 원이 엄마는 남편의 병환이 날로 나빠지자 자기 머리카락과 삼줄기로 미투리(신발)를 삼는 등 정성을 다해 쾌유를 빌었다. 남편이 끝내 어린 아들(원이)과 유복자를 남기고 서른한 살의 나이에 숨지자 안타까운 마음을 글로 써 관 속에 넣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편지가 발견된 대구지검 안동지청 입구엔 원이 엄마를 형상화한 아가페상이 4월 세워졌다.

안동=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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