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을 생각한다|이런 혼란보고만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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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언제까지 이런 혼란과 이런 난센스를 보고만 있을 것인가.
9일 마감한 전기대학 입시지원 창구는 예상했던 대로「눈치작전의 극치」바로 그것이었다.
적성이니 자질이니 장래 지향이니 하는 말은 고득점을 한 극소수의 우수 수험생 말고는 한마디로 「헛소리」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마감 최후의 순간까지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지망할지를 놓고 우왕좌왕해야했다. 적성은 고사하고 아무 데나 합격하는 일이 급선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몸에 맞게 옷을 맞추어 입는 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옷에 몸을 맞추는 꼴이라고나 할까.
「당첨입시」란 말이 그럴듯한 이런 대학입시 풍경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정부가 「7.30교육개혁」을 통해 현행 대입제도를 채택한 것은 과열과외를 막고 고교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목적이 부분적으로나마 이룩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성과가 얼마나 보 잘 것 없는 것인가는 연4년째 되풀이되는 입시홍역을 통해 우리 모두가 너무도 생생히 경험하고 있다.
현행 제도의 모순이나 단 처는 여러 차례 지적해온바 있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현행 대입제도에서의 합격과 불합격을 수험생은 물론, 학부모 건 교사들이건 누구도 납득하거나 승복하지 않는데 있다.
눈치를 잘 보거나 배짱 한번 잘 부리면 어림없는 점수를 갖고도 이름 있는 대학에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생긴다. 반대로 뭐 별달리 적성을 고집한 것도 아닌데 학과를 잘못짚어 낙방의 쓴잔을 드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대학에 떨어진 수험생이 그 이유를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고 눈치가 모자라서, 또는 운이 모자란 때문이라고 여긴다면 이건 보통문제가 아니다.
요행으로 합격한 수험생 역시 어리둥절할 것은 뻔하다. 세상을 눈치 하나로 살아갈 가능성도 있겠지만 엉터리 합격에서 오는 심리적 갈등으로 비뚤어진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교육적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어느 제도 건 장점이 있는 반면 결점도 있게 마련이다.
대학입시만 해도 건국이래 숱한 제도가 시험대에 올랐다. 각기 장단점이 있으나 그래도 가장 합리적이며, 부작용이 적은 제도는 경쟁입시 제도라는 게 우리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어차피 대학의 문이 지망자 모두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상 경쟁은 불가피하다.
자신의 적성이나 장래 설계에 맞추어 자신의 실력에 따라 대학과 학과를 선책, 실력 껏 겨루어서 떨어졌다면 후회도 없고 그 결과에 승복 않을 리가 없을 것이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민주적인 정부가 할 일이다. 교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입에서의 눈치싸움을 방치해 놓고서 전입교육이 어떻고 교육의 질이 어떻고 아무리 외쳐본들 설득력이 있을 까닭이 없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 능력 껏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면 눈치나 배짱 따위, 이와는 너무 동떨어진 사고방식을 길러주는 것 이상으로 비교육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현 제도의 또 하나의 기둥인 내신 제만 해도 많은 문제점과 함께 숱한 부작용의 원인이 되었다.
그 동안의 보완은 결국 임기응변의 땜질이었지 본질적인 문제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현행 제도를 채택하게 된 명문이 과외일소에 있었지만, 과외가 극성을 부린 원인이나 사라지게 된 것이 어디 제도 때문인가.
제도를 자주 바꾸는 게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시행착오인 것이 분명히 증명되었는데도 아무런 대응책을 세우지 않거나 모순을 방치한다는 것은 정부로서 떳떳한 자세는 아닐 것이다.
새로운 교육제도의 실험이라면 4년으로 충분하다. 경쟁과 자율의 원칙에 맞기는 것이 바람직한 대학입시를 문교부가 완전 관리하면서 얻은 성과가 과연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눈치작전이나 조장하는 비교육적인 제도로 나라안이 온통 열병을 앓는 현상은 이제 청산할 때가 되었다.
진인사 대천명은 인간사회의 변함없는 미덕이다. 제도개혁의 방향이 그런 미덕을 존중하고 고무하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대입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촉구하는 소이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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