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용필|10년 후…1994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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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0년 후 한국·한국인의 자화상은 우리들 모두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발전과 변화의 템포가 워낙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생활에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는 일들과 사람들이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를 미리 그려보는 글을 시리즈로 싣는 것도 유익하고 흥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편집자】
1994년도 저물어 가는 세모의 밤. 가수 조용필은 그 해의 가수 왕을 뽑는 KDC생방송 공개홀에 앉아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젊음의 모습보다는 중년의 냄새가 깃들기 시작해서 좀처럼 나이를 먹을 것 같지 않던 동안의 얼굴이었지만 머리는 조금 벗어지고 앞이마가 보기 좋게 까지고 있었다. 배도 조금 나와서 조용필은 지난 가을부터 그토록 즐겨 마시던 술의 양을 불이고 테니스를 시작해 열심히 치고있는 것이었다.
그는 두 아이를 가진 중년의 가수가 되었지만 아직도 인기는 여전해서 특히 새해를 앞둔 각 방송국을 찾아다니며 흘러간 그의 히트송인 「창 밖의 여자」 「돌아와요 부산항」을 부르거나 최근에 신곡으로 발표하여 크게 히트한 「내 곁을 떠나지 마오」를 부르느라고 목이 조금 쉬고있었다.
그는 올해도 가장 인기 있는 10대 가수에는 뽑히지 못하고 지난80년대를 휩쓴 선배가수로 초대되어 나왔지만 그는 이미 그런 명예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가수 왕이라는 타이틀을 80년대에 수없이 독점했으며 자신이 아직 그런 명예에 연연하기엔 이미 나이도 들었고 중건가수로서 젊은이들의 인기관심 대상에서 벗어나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전히 훌륭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일선 무대에서 활동하는 가수라기 보다는 세월을 초월한 가수로서 존경을 받고있는 처지였다.
조용필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때였다.
『출연시간이 되었는데요.』
쇼 담당 PD가 조용필에게 무대로 나서줄 것을 재촉했다. 담배를 눌러 끄고 막 일어서려는데 마침 올해 최고의 인기와 가수 왕 타이틀을 독점한 젊은 가수 우천동이 분장실로 들어섰다. 그는 조용필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거만하게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는 쇼 담당 PD에게 초조하게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 시간이 없어요. 금방 출연하고 떠나게 해주세요. 공항으로 나가서 비행기를 타야해요.』
『지금은 조용필씨 출연차례인데…』
난처해진 PD가 말했다. 『선배님, 미안합니다.』
가수 우천동이 말했다.
『제가 먼저 출연해도 괜찮겠지요』
마음좋은 조용필은 머리를 끄덕여 허락했다.
부리나케 무대위로 우천동의 모습이 뛰어 나타나자 객석에 앉았던 젊은 아가씨들이 『으악, 으악, 악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몇몇 아가씨는 앉은자리에서 기절을 하고, 어떤 아가씨는 통곡을 하면서 울었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조용필, 웃으며 하는 말-.
『짜식, 왕년에 누가 바빠 보지 않은 사람 있나-.』
최인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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