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바로서려면] 상. 사유화된 정보기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정보맨들이 지적한 국정원 문제의 핵심은 권력자의 정보기관 사유화였다. 통치권자가 정보기관을 사유해온 방법은 인사였다. 실제 정권이 바뀌면 국정원은 대통령의 동향 측근, 이들의 비선라인이 점령하다시피했다. 수뇌부뿐 아니라 실.국장급, 심지어 과장.계장급의 운명도 바뀌었다.

◆ 보복.차별 인사로 사유화=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 초 대량해직 사태가 있었다. 당시 1~3급 간부 148명을 포함해 580여 명이 반(反) DJ로 찍혀 한꺼번에 안기부를 떠나야 했다. 빈 자리는 주로 대통령과 측근의 동향 출신이 메웠다.

현직 간부 A씨의 증언. "단순히 호남인사를 비방했다고, 출신이 영남이라고 하루아침에 쫓겨난 사람이 많았다. 반면 광주지부 같은 데는 내부통신망에 새로 근무를 원하는 사람을 모집했다. 광주지부 직원이 정권이 바뀌자 한꺼번에 서울로 올라와 텅 비게 됐기 때문이다. 그때의 원한이 공운영 같은 패륜아도 낳았다."

물론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배제인사는 군사정권부터 문민정부까지 존재했던 어두운 유물이다. 보복이 보복을 낳는 형국이었다.

취재팀이 인터뷰한 여러명의 전.현직 직원은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때는 공채 때 '싹부터 자르겠다'며 각각 호남과 영남 출신은 안 뽑았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문민정부 말기 97년 정규과정 공채(100명)에선 호남 출신을 5명밖에 뽑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반대로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신입 직원의 60~70%를 호남 출신으로만 채운다"는 소문이 원내에 파다했다. 그래서 '종자론'이란 말까지 유행했었다고 한다. 최근 퇴직한 한 3급 간부는 "인사 갈등은 더 이상 수뇌부나 서기관급(4급) 이상 간부의 문제가 아니다"며 "6급(주사), 7급(주사보) 직원까지 출신 지역으로 갈라져 으르렁거리고 있다"고 전했다.

◆ 비선 움직이고 하극상도=점령군처럼 정보기관을 장악한 특정세력은 비선화하게 마련이다. 대공파트에서 근무했던 L씨의 말.

"국정원 일은 조직이 해야 한다. 그러나 비선이 했다. 형, 동생 하며 오만 짓거리 다 하더라. 부이사관(3급) 주제에 차장을 컨트롤하니까 조직이 무너졌다. 그 부작용이 (각종 게이트 사건에서 드러난) 이권 개입이다."

"DJ정부 시절 실세들과 가까운 모 팀장에게 총무관리 국장이 가서 절을 한다는 소문까지 났을 정도다. 모 단장은 원장과 같은 고교를 나왔다고 국장이나 차장보다 힘이 있었다. 계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연과 끈이 중요했다."(전직 K씨)

하극상도 벌어졌다.

"모 차장이 대학 후배 한 명을 정치과에 발령 내 몰래 원장의 개인비리를 작성하는 보고서를 만들라고 지시한 적도 있다. 원장은 퇴임 후에도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차장이 원장의 등 뒤에서 칼을 꽂는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국정원이란 조직기강이 깨져버리고 오늘처럼 한심한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현직 K씨)

◆ 불법 도.감청과 존안 파일=권력자가 측근을 통해 정보기관을 사유화할 경우 측근들은 정권을 위해 불법 도.감청이나 정치공작도 불사하게 마련이다. 전직 국내파트 직원 K씨는 "대통령들이 누구나 처음에는 '(도청)하지 마라'하다가 좀 어려워지면 '안기부가 예전에 잘하다 요즘 왜 이래'한다. YS 때는 부장이 보고할 때 자다가도 '김대중' 소리하면 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이러니 도청을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렇게 불법 도.감청을 통해 작성된 각종 보고서나 인사존안파일은 위력을 떨쳤다.

"국정원 존안파일 대상은 집중적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필요하면 미행도 도청도 하는 것이다. YS 때 1만 명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존안파일 때문에 날아간 사람도 부지기수다. 별 이유없이 장관.기관장이 교체되는 것은 대부분 존안파일 때문이라고 보면된다."(전직 K씨)

◆ "인사독립이 곧 정치중립화"=정보맨들은 결국 정보기관 인사의 독립이 국정원 정치중립화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국정원장은 정무직 인사가 불가피하지만 대통령 측근 인사는 피해야 되고, 차장이나 기조실장 등에는 원 출신 전문가가 기용돼야 한다"(현직 지부장 A씨)는 것이다. 국내정치 정보를 요구하지 말아야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국정원 출신의 J교수는 "참여정부 들어 국내정치 보고를 받지 않고 정보기관 수장에 대통령 측근을 앉혀야 한다는 논리를 뿌리친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내부적으로 탈정치화.탈권력화가 완전히 이뤄진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탐사기획팀 = 강민석.김성탁.정효식 기자,
정치부 = 강주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