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다돼 네 번째 복학재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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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8년도에 입학하여 l971년 대학 4학년생이 되었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학교를 마치지 못하였고 그로부터 13년째 되는 내년에 다시 4학년생으로 돌아와도 좋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동안 학교에서 쫓겨나기를 네 번, 복학하기를 세 번 거듭해 온 지난날이 스물스물 차례로 다가선다. 첫 번째 쫓겨남과 첫 번째 복학이 잇달았던 1971년 그 해 두 번째로 쫓겨난 나는 최전방 방책선상에서 3년 간의 군대생활을 해야했다. 맨 처음 나의 동료들과 나를 사로잡은 것은 캠퍼스에의 끝없는 향수였다.
우리를 보내며 벌겋게 상기되어 눈물을 삼키던 스승들, 몸부림치던 학우들, 교정에 나뒹굴던 낙엽들, 그리고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던 백목련이며 진달래며 마로니에들. 차츰 현실에 눈 돌릴 여유를 찾았을 때 우리는 마침내 우리가 서 있는 방책선, 민족분단의 첨예한 상처 앞에서 민족과 역사와 분단의 몸살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남북을 가르는 철조망, 그 양편에서 총구를 맞세우고 대치하는 동족의 운명, 주춧돌만 몇 개 남은 옛 집터에서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살구꽃은 우리의 가슴을 헤집고 또 헤집어댔다.
참다운 민주주의의 실현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민족통일이라는 우리의 열망은 이로써 더욱 절실한 것으로 되어갔다. 이런 판에 유신이 터졌다. 정녕 저것은 아니라는, 정녕 저것은 통일에의 진정한 길 일수 없다는 통절한 느낌이 가슴을 무겁게 죄어 왔다. 어떻든 우리는 소위 교육적 견지와 유신대열에의 전 국민적 참여를 위한 관용적 국민화합조치라는 당시 유신정부의 복교허용조치에 의해 군복무를 마침과 동시에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번번이 그러했던 바와 같이 그 교육적 견지·관용·국민화합은 이 때도 허구에 불과했다. 학원은 유신체제 건설의 정지작업으로 인해 페허화되어 있었고 사회전체는 재갈 물린채 엉뚱한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당연히 세 번째로 쫓겨나 길다면 긴 감옥살이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로 또는 같은 대열로 찾아든 많은 근로자들, 언론인들, 스승들, 종교인들, 문인들과 더불어 우리의 70년대는 결코 터잡기가 용이한 것은 아니었고 그만큼 방황의 댓가를 지불해야했지만 괴롭고 외로운 것 만은 아니었다. 고통을 소화할 수 있는 만큼 희망은 꿋꿋해졌고 발전의 길은 열려있었던 것이다 .직장생활도 시작했고 결혼하여 아기도 낳았다. 그러던 차 느탓없이 10·26이 일어났고 자연히 세 번째 복학이 이뤄졌다.
학교에 가보니 옛 학우들과 후배들 중 강단에 선 사람들이 간혹 눈에 띄었다. 이런 저런 머슥머슥함과 어설픈 마음을 채 가누기도 전에 느닷없는 태풍이 몰려왔고 나는 또 쫓겨난 몸이 되고야 말았다. 네 번째였다. 어린 자식과 처와의 가족적 이산이 보태졌다. 유신시대에 아들 덕분에 직장을 잃고 장기간 몸져누우셨던 아버님과 어머님은 이때 아주 자식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고 했다.
나의 학생으로서의 학교와의 인연 또한 실질상 이때 완전히 끊긴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다시 대학 4학년생으로 돌아와도 좋다는 소식을 듣는다 40줄을 코앞에 둔 나이, 직장에서는 과장님이오, 사회에서는 명색이 문학평론가에다 시인이오, 가정에서는 이미 여러식구의 가장인 내가 학교로 간들, 아니 간들 무슨 의미의 차이가 있을손가. 다만 해와 달 아래 억압없고 찢김없는 것, 그것만이 진정 기다려질 뿐이다.
적어도 우선 이번 복학조치가 지난날 여러차례 겪은 허구투성이의 교육적 견지·관용·화합 등 겉만 뻔드름한·슬로건으로 주어지는 또 다른 허구가 아니라는 참된 믿음을 주고 그 기본적 전제로서 부당하게 갇힌 모든 사람들과 제 자리에서 내물린 모든 사람들의 정당한 풀림과 되돌아감을 동시적으로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이 세 가지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구체화되는 정도와 양상에 따라 이번 복학조치는 구시대적 허구의 연장이 될 수도 있고 극복이 될 수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모쪼록 정부의 금번 용단이 진정 극복으로서의 내실을 가진 새 시대의 상징이 되어 국민학교에 입학 할 맏아이와 함께 겹겹이 주름진 이 애비도 흔쾌히 책가방을 늘고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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