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뉴스 안 봐야 할까요, 사고 날까봐 종일 두렵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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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01 도망칠수록 더 커지는 불안

Q (잠자리서도 화재 걱정하는 여성)서른 살인 아이 엄마입니다. 저는 뉴스에서 나오는 사고들이 저한테도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너무 불안합니다. 나한테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혹은 가족들에게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요. 그런데 지난해 말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고로 돌아가시고 나서 더욱 몸을 사리게 됩니다. 차 운전도 무서워서 못하게 되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도 사고 나면 어쩌지, 다리 아래로 떨어지면 어쩌지, 화재가 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만 합니다. 집에서도 잠자리에 들면서 화재가 나거나 건물이 무너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합니다. 걱정이 될 때마다 남편에게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수시로 얘기하니 남편도 괴로워합니다. 남편이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불안한 데다 안 좋은 소식만 접해서 그런 거 같다고 한동안 뉴스를 보지 말라고 하던데, 그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요? 간이 콩알만 해진 저, 어떻게 해야 좋을지요.

A (몸 사리지 않고 진료하는 윤 교수) 불안 반응이 과도해진 상황입니다. 불안은 뇌 안의 위기 관리 시스템이 만드는 신호이고 걱정은 불안의 내용입니다. 우리 생존에 있어 꼭 필요한 소중한 녀석인데 이 녀석이 지나치게 켜지면 뇌의 기능과 삶의 질이 오히려 떨어져 버립니다.

 엄마의 경우에는 모성애가 불안감을 더 키웁니다. 모성은 자녀의 생존을 보존하려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겁이 없던 여성도 출산 후에는 잔 걱정이 늘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급작스런 가족의 사고도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최소 6개월간은 그 불안감이 더 증폭됩니다.

 우선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은 좀 과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병적인 것은 아니라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문제라 여겨 불안을 찍어 누르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더 볼 필요는 없겠지만 억지로 보지 않는 것도 일종의 회피입니다. 도망치면 불안이 더 커집니다. 불안하건 말건 내 삶을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삶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면 뇌가 불안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인식해 불안 반응을 줄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여러 사고 소식이 끝도 없이 계속되다 보니 우리 뇌 안의 있는 위기 관리 장치가 너무 자극받아 과도한 불안 반응에 고생하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불안은 우리의 생존을 지켜 주는 소중한 신호지만 과도하면 마음에 긍정적인 느낌을 싹트지 못하게 하고 행동에도 여러 제약을 가져옵니다.

 불안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요, 불면증도 상당수는 과도한 불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뇌가 위기 상황이라 인식하여 불안을 만들기 때문에 편안하게 잠들 수 없는 것이죠. 공황장애도 과도한 불안의 다른 모습입니다. 작은 위험 요인에도 공포와 불안 반응이 크게 일어나는 것이죠. 불안은 시험도 잘 못 보게 합니다. 불안 신호가 높아지면 우리 뇌가 불안을 처리하는데 뇌 능력의 상당수를 할당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실제 시험이나 인터뷰에선 뇌의 반밖에 이용하지 못하는 거죠. 열심히 노력했는데 시험 걱정에 시험을 못 보게 되니 속상한 일입니다.

 또 걱정은 인생 경험이 쌓일수록 늘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적절한 경험이 삶의 위험을 잘 피해가는 지혜로 활용되는 것은 분명한데 한편으로는 삶의 위험에 대한 철저한 태도는 불안을 증폭시키게 됩니다. 나이가 늘어날수록 걱정이 같이 늘어나는 이유입니다. 이렇듯 불안은 중요한 신호이지만 과도하면 상당히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고마우면서도 까칠한 친구입니다.

02 ‘걱정은 정상이다’ 심리 훈련

Q 저도 제 걱정이 과하다고 생각해 마음을 편히 먹으려 하는데 잘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왜 걱정을 사서 하나며 마음 편히 먹으라고 하는데 마음 편히 먹으란 이야기 들을 때 짜증이 확 옵니다. 제가 걱정될 때마다 남편한테 하소연한다 이야기했는데 남편도 잘 받아 주다가 얼마 전 짜증이 나는지 저에게 퉁명스럽게 “대충 걱정하고 마음 편히 먹어봐“라고 하는데 서럽고 속상해 대판 싸우고 엉엉 울었습니다. 이러다간 부부 관계도 나빠질 것 같습니다. 크게 심호흡도 해보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도 떨어 보고 하는데 그때뿐, 걱정은 커져만 갑니다. 어떻게 해야 걱정이 줄어들까요

A  걱정 때문에 걱정인 분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가 주변에서 하는 ‘마음 편히 먹어’ 라는 말입니다. 걱정이 많다는 게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의지가 약한 것으로 판단하기 쉬운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의지가 강하다 보니 걱정이 늘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의지라는 것이 내 삶을 내가 원하는 형태로 끌고 가겠다는 것인데, 인생에 워낙 변수가 많다 보니 의지가 강하다 보면 걱정이 늘어나기 쉽습니다. 마음 편히 먹으라는 것은 내 마음에 대한 통제를 풀라는 것인데 자기 마음을 강력하게 통제하다 갑자기 이것을 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걱정 많은 분에게 마음 편히 먹으라는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는 생각의 70% 정도는 부정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내 뇌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것이죠. 문제는 그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들고 집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걱정은 크게 두 가지 내용입니다,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이고, 또 하나는 미래에 대한 염려입니다. 따라서 걱정에 사로잡히게 되면 현재가 없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실제 행복을 느끼고 가치를 느끼는 것은 현재인데 현재가 없어지니 삶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 자체는 긍정적인 위험 신호이나 그 생각에 30~50% 이상 빠져 살게 되면 현실이 없어져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우리는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의지로 부정적인 생각을 찍어 누르는 것입니다.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찍어 누를수록 더 커지는 것이 걱정의 특징입니다. 또 하나는 긍정적인 생각을 적극적으로 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대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정적인 생각에 긍정적인 생각을 혼합시켜 내 뇌를 더 힘들고 복잡하게 할 수 있습니다. 24시간 음울한 라디오방송에 24시간 행복한 이야기만 하는 라디오를 동시에 켜고 듣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더 괴로울 수 있습니다.

 ‘걱정은 정상이다’라는 생각이 도움이 됩니다. 걱정을 만들어내는 자아와 그것을 처리하는 자아를 분리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걱정이라는 위험 신호를 실제 현실인양 인식하고 빠지는 것을 인지융합현상이라 하고 거기서 빠져 나와 객관적으로 위험 신호를 인식하는 과정을 인지해제라 합니다. 즉 생각은 생각일 뿐이라 인식하는 것을 인지해제라 하는 것이죠. 생각을 억누르지도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만들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걱정이 내 뇌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놓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면 걱정 자체는 나의 생존을 염려하는 뇌가 만들어 내는 위험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인지 해제에 한 방법으로 ‘생각아 고맙다’가 있습니다. ‘오늘 암에 대한 걱정이 많이 드네. 생각아 고맙다. 내 건강을 신경 써줘서. 내가 생활 습관도 좋게 바꾸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도 할게. 너무 마음 쓰지마. 그리고 난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낼 거야. 내가 살고 있는 삶은 바로 이 순간의 현실이니까.’ 흔한 동요나 가요에 음률을 맞추어 부르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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