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감·사인 없는 통장 불법 인출 은행도 피해 금액 절반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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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인감이 찍히지 않은 예금통장을 도난당해 돈이 빠져나갔다면 금융회사도 피해 금액의 절반을 배상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17일 예금주 김모씨가 충남의 한 단위농협을 상대로 제기한 분쟁조정신청에서 일부 손배배상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인 김씨는 6월 농협 점포에 들렀다가 기존 통장에 빈 자리가 없자 새 통장을 발급받았다. 김씨는 이때 통장 거래용 인감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농협 측은 단골 고객임을 감안해 인감 없이 새 통장을 내줬다. 김씨는 이 통장을 관리사무소에 보관했지만 다음달 5일 누군가가 이 통장을 훔쳐 9400만원을 불법 인출했다.

김씨는 "농협이 인감 없는 통장을 재발급할 때 규정에 따라 거래정지 등 예방조치를 취했다면 예금 인출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농협은 이에 대해 "인감 날인 없는 통장 재발급은 관행이며, 이번 사고는 예금주가 통장과 비밀번호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반박했다.

분쟁조정위는 이에 대해 "거래 인감을 확인할 때까지 예금 지급을 정지하도록 한 규정을 어긴 부당한 업무처리와 예금 불법 인출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며 농협이 피해 금액의 절반인 47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분쟁조정위는 김씨에 대해서도 "통장을 관리사무소 경리직원의 개인 서랍에 보관했고, 사무소 전화번호를 비밀번호로 사용하는 등 통장 관리에 소홀했다"며 50%의 과실책임을 인정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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