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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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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최근 한국어로 번역된『The God that Failed』(실패한 신)에는 정치·경제적으로 어수선한 시기였던 1930년대에 「앙드레·지드」나「아더·케슬러」「스티븐·스페더」「이그나시오·시로네」「리처드·라이트」등 서구지성들이 마르크시즘의 예찬자로서 소련에 매혹되고 나아가 소견을 시격화하게까지 되었나, 그리고 종국에 가서 그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되었나하는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으로 씌어져 있다.
그들이 공산주의에 품었던 동경이 소련이라는 실체를 통해 산산이 깨어졌듯이 나의 북에 두고온 고향(필자는 함경남도함흥태생이다) 에 대한 미련도 10년전의 그곳 여행을 통해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이「사회주의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하면 그곳은「조지·오웰」의『1984년』 이 묘사해낸 것보다도 훨씬 더 가공할 사회였다. 김일성은 신위에 군림하여 개인의 정신적 자유까지도 포함한 일체가 그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10년전 북한 방문 비자를 선정하러 알제리의 그들 대사관에 연락을 했을때 그들은 내 인적사항을 어떻게 알았는지 내 두아이들을 평양에 데려가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의 품안에서」무료로 교육을 시켜주겠다고 대뜸 제의했다. 내가 정중하고 단호하게 그 제의를 거절하자 그들은 이번에 한번 다녀오면 아마 마음이 변할거라고 했었다.
결국 혼자서 비자를 받으러 알제리로 갔을때 그들은 내 미국 여권을 받아넣고는 대신 가명으로 된 북한외교관 여권을 내주었다. 그 여권으로 부다페스트나 동베를린, 모스크바, 옴스크, 이르쿠츠크등을 마음놓고 여행하라고 했다.
그런 불법적인 여행은 싫다는 나의 항변에 그들은 그렇게 못하겠다면 이번 여행에 협조할 수 없다는 식의 으름장을 놓았다. 며칠간의 고민끝에 나는 그들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고향이고 선친이 묻혀있는 함흥이 나는 절실하게 그리웠고 이미 미국의 CBS와 몇몇 잡지사와도 계약이 끝난 상태여서 북한을 꼭 방문해야만 할 처지였다. 게다가 미국무성에서는 북한과는 외교 관계가 없으므로 여행중 내 신변을 보장해 줄수 없겠다고 통보해 왔었다.
그들은 나의 북한 체류중에도 몇번이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글 끄집어냈다.
『현동무의 자제들이 조국에서 편안히 공부하는 동안 동무는 미국에서 아무런 걱정없이 언론 활동에 전념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진정 조국을 생각하신다면 동무 생전에조국 통일이 이구어지도록 투쟁을 하셔야죠!』
『투쟁이라뇨?』 나의 물음에 그들은 단호히 이렇게 대꾸했다.『미국과 남조선의 동포들에게 사회주의 지상낙원인 우리인민공화국을 널리 알리시는 거지요. 동무의 명성과 위치로는 충분히 미국내에서 뜻맞는 동지들의 모임들 만들어 우리의 위대하신 수령동지의 주체사상을 알림은 물론 남조선에서도 우리의 목표달성을 위해 여러가지 일을 하실수 있지 않겠습니까?』『또한 자제분들도 저의가 잘 맡아 교육시킬 것이며 선친의 묘소도 잘 돌봐드리겠습니다. 동무 또한 언제든지 고향을 찾으실수 있고 조국통일이라는 혁명과업 완수에 지대한 공헌을 하시는 겁니다.』
3주일 북한에 있는 동안 나는 평양 교외의 외딴 별장에 갇히다시피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끝없는 찬양과 김일성사상 및 김일성대학 교수들의 강연, 반미·반한영화를 보고 있어야 했고 가끔 각본에 따른 모범 농장및 공장· 박물관·탁아소등의 견학을 강요받았다.
3주간의 북한 여행이 어찌나 지긋지긋했던지 나는 모스크바에 비행기가 잠시 기착했을때 이상한 해방감조차 느꼈다. 그런데 평양에서 이곳까지 따라온 안내원이 갑자기 나를 국제선 라운지의 화장실로 끌고갔다.
거기에서 그는 그들의 북한외교관여권의 반납을 요구하며 나의 미국여권을 건네주었다. 그 여권을 다시 찾아들고 파리행 비행기를 탄지 얼마 안되어 비행기는 예정에도 없는 키에프 착륙을 하더니 탑승객의 여권을 재조사하였다. 내 미국여권에 소련 경유 비자가 찍혀 있을리 없었고 결국 나는 키에프 공항호텔에서 3일간을 갇혀있어야했다.
소련의 군수사요원이 나를 3일간이나 심문했고 4일째되는 아침에야 겨우 풀려나 그날 파리로 가는 첫 비행기를 탈수있었다.
갇혀있는 동안 나는 많은 생각을 했었다. 엄마를 잃은지 얼마되지 않은 두 아이들에 대한 걱정, 나 자신에 대한 부안과함께 무섭게 변해버린 고향에 대해 느낀 배반감과 이질감이 나를 절망케 했다.
그후로 나는 북의 어떠한 행동에도 놀라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노선과 이익에 맞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신의나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는 지체없이 말살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80년대에 있어서 실패한 신은 바로 북한의 김일성과 그 일당들이라고 말하고싶다.
그들은 우리의 가치 기준에서 안일하게 평가하면 안된다. 해방이후 우리와 상극의 길을 치닫고있는 그들의 행태를 어떻게 우리의 관점으로 설명하려 하는가. 많은 자유진영국가들이 그들의 정치와 사화를 매우 의아하게만 보는데 그쳐선 안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실상을 똑바로 파악하고 그런 맥락속에서 그들의 행동들 주시해야만 인간의 기본권과 국제사회의 철칙과도 같은 신의를 시시각각 저버리는 그들의 정체를 파악함은 물론 이에대한 바르고도 강력한 공동의 대책을 강구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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