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외국 CEO들의 "투자 못하겠다"는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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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들은 한국이 정보기술(IT) 능력이나 생명공학 잠재력, 우수한 인재, 지리적인 여건 면에서 투자할 매력이 크지만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의 후진성이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휴대전화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퀄컴의 폴 제이콥스 사장은 "시민단체와 국회,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인해 한국 투자를 확대하는 데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경매회사인 이베이의 멕 휘트먼 사장은 "한국에는 우수한 인재와 뛰어난 연구개발(R&D) 능력을 갖춘 기업이 많지만 공정한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투자지역으로는)국제 기준에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다국적 제약회사 머크의 데이비드 엔스티스 아시아지역 회장은 "한국에서 바이오(BT)산업이 발전하려면 시장원리에 따른 국제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지적재산권 등 법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결같이 한국의 기술력과 인력은 탐나지만 막상 투자는 망설여진다는 얘기다.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는 각종 정부 규제와 반기업 정서, 반시장적인 정부 정책들을 고치지 않으면 선뜻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는 우회적인 의사표시다. 이러니 정부가 아무리 외국인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한들 성과가 날 리 없다. 외국의 기업가들은 국내 기업환경에 대한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를 날카롭게 꿰뚫어 보고 있다. 겉으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실제로는 각종 규제로 기업을 옥죄는 실상을 그럴듯한 홍보만으로 가릴 수는 없다.

국내기업의 활동을 어렵게 만드는 여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은 채 외국기업에 대한 특혜만으로 투자를 끌어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내기업이 활발하게 사업을 펼칠 수 있어야 외국인 투자도 들어온다는 교훈을 외국 CEO들의 쓴소리가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