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선지급제도 도입해야"… 이혼하면 자녀 양육비 "나 몰라라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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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4년 전 이혼한 안순옥(44.여.서울 삼선동)씨는 지난 1년간 양육비 소송을 벌였지만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 이혼 재판 당시 남편은 두 아들의 양육비로 월 100만원을 주기로 했지만 양육비 지급은 1년을 넘기지 않았다. 견디다 못해 양육비 소송을 낸 안씨는 1년간의 긴 법정싸움 끝에 100만원의 과태료와 20일간의 감치처분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남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안씨는 "이혼 전부터 외도한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지 못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 왔다"며 "학원 한 번 못 가고 대학도 휴학해야 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혼이 급증하면서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가정도 늘고 있다. 현행법상 양육비를 받지 못할 경우 '이행명령 신청' 등의 제도가 있지만 별다른 실효가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혼에 이어 양육비마저 제대로 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정에서 자란 자녀가 새 빈곤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며 "개별 가정의 문제로 방치할 게 아니라 선진국처럼 국가가 적극 개입해 양육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방치된 양육비 문제=이혼 때 만20세 미만의 자녀에 대해서는 부모 중 자녀를 맡지 않는 쪽이 부담하게 되어 있다. 전체 이혼 중 어머니가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3분의 2 정도 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연구위원은 "경제력 없는 여성이 아이를 키우면서 양육비를 받지 못해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양육비를 받아낼 장치는 있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 정당한 이유 없이 양육비가 지급되지 않으면 법원에 이행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이행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와 30일 이하 감치처분 등을 받는다. 그러나 안씨의 사례처럼 이행명령과 감치처분을 받아내도 양육비 지급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정미화 변호사는 "양육비가 소액이어서 소송으로 가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법원은 이혼재판 때 배우자의 재산.소득과 결혼 파탄 책임, 자녀 연령 등을 고려해 양육비를 정하며, 통상 자녀 일인당 월 30만~70만원을 성년이 될 때까지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양육비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2004년 한국의 이혼율은 1980년에 비해 4.8배, 95년에 비해 2배나 급증했지만 양육비 문제는 방치돼 온 탓이다. 이에 대해 조 위원은 "미국에서도 양육비 지급을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기 전에는 이혼 가정의 70% 정도가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 선진국에서는=미국은 80년대 중반 양육비를 미리 공제하는 소득삭감명령 제도를 강화했다. 양육비를 내는 부모가 봉급을 받을 때마다 월급 중 양육비를 미리 공제토록 하고, 이 업무를 담당하는 양육비 수급 부서를 각 지자체에 둔 것이다. 독일도 아동복지기관에 양육비 보좌인을 둬 양육비 지급 여부를 파악하고 법정소송을 대행토록 하고 있다. 또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양육비를 주지 않을 경우 국가가 일단 일정 액수를 양육비로 지급한 뒤 부양 의무자에게 돈을 받아내는 양육비 선급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부산대 법대 김상용 교수는 "미국의 소득삭감명령 제도나 독일의 양육비 보좌인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도 "사회복지 차원에서 양육비 선급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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