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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대통령과 탕수육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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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훈범
논설위원

부장이 부원들과 중국집에서 회식을 했다. 상석을 차지하고 앉은 뒤 호탕하게 외친다. “자, 맘놓고 시켜. 난 짜장면.” 이 대목에서 “탕수육”을 외친 부원이 있다면 그는 없는 눈치를 고단한 ‘내무생활’로 갚아나가야 할 터다. 그나마 용기 있는 직원이 있다면 잡채밥을 시킬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짜장면이나 짬뽕 주문이 이어지다 주인장을 향한 애꿎은 타박으로 아쉬움을 달래기 마련이다. “서비스로 군만두 안 줘요?”

 부장을 하면서 제일 겁나는 게 그런 거였다고 지인은 말했다. 부장이라고 내 판단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왜 없겠나. 그럴 때 누구라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다른 의견을 내주길 바란 적도 많았다는 거다. 그런데 토론을 기대하며 “그건 이런 거 아냐?”라고 말해버리면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고 입을 닫더라는 거다.

 그게 리더의 숙명이다. 외로울 수밖에 없는 거다.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손에 쥔 권력이 커질수록 외로움의 두께는 더해지고 모질어진다. 일개 기업의 부장도 그럴진대 국가 최고권력자야 두 말이 필요하랴. 대통령이 짜장면을 시키는데 어떤 각료가 탕수육을 외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런 대답이 안 나오면 다행인 거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우리 모두 짜장면으로 통일!”

 그런 리더의 부담을 이스라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이 잘 설명한다. 국방장관까지 겸하던 그는 장관 자리를 스물아홉 살의 장교 시몬 페레스에게 물려줬다. 페레스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서 장관직을 잘 수행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벤구리온에게 물었다. “처음 리더가 됐을 때 뭘 느끼셨습니까?” 벤구리온이 대답했다. “주위를 둘러봤는데 조언을 구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였네. 그래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했지.”

 벤구리온의 마음은 토론할 부원을 찾는 부장의 마음과 같은 거였다. “자네도 리더가 됐으니 혼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걸세”란 뜻이 담겼지만 “옳은 답을 찾아서 내게 조언해주게”란 부탁이 더 큰 뜻이었을 터다.

 그런 의미에서 장관 해임 건의권 행사 운운한 새 총리의 취임 일성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어렵사리 됐다고 얕잡아보지 말라는 ‘군기잡기’일 수 있다. 여당 대표가 이름조차 못 욀 정도로 장관들의 존재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장관이 일을 못하면 총리가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건 당연한 거고, 당연한 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장관들이 존재감 없는 이유는 장관들이 더 잘 안다. 대통령이 물어봐야 대답을 하고 대답을 해야 존재감도 생길 텐데 그렇지 않으니 짜장면 아니면 짬뽕이지 그 말고 뭐겠느냔 말이다. 묻지 않으니 눈치 살피고 받아 적기만 하니 태극기 게양 의무화 같은 어쭙잖은 아이디어 말고 나오는 게 없는 것이다.

 대통령이 묻지 않는 이유는 영국 철학자 이사야 벌린의 혜안에서 대답을 찾을 수 있겠다. “(엘리트들은) 끊임없이 늘어나는 전문적 지식에 대한 자신의 무지와 정확하게 비례해 자신의 책임이 증가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언론인 헨리 브랜던과의 대담)

 대통령이라고 어찌 다 알겠나. 그러니 물어야 한다. 묻지 않으면 두려움은 더 커지고 책임도 따라 늘어만 간다. 비서에게 묻고 장관에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들어야 한다. 그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내 생각은 잠시 접어둬야 한다.

 공공·노동·금융·교육 4대 개혁과제를 비롯해 산적한 현안을 일선에서 풀어갈 사람이 결국 장관들이다. 짜장면 대통령 앞에서 탕수육 정도는 시킬 수 있어야 그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겠나. 그 정도 힘은 갖고 정책을 챙기고 조직을 지휘해야 공직사회가 책임 있게 돌아갈 수 있고 그만큼 대통령의 무거운 짐은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의 역설이 다른 의미가 아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리더다. 고로 나는 따라간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