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배추김치와 동치미를 무척 즐기는 대통령|경무대 뒤뜰에 묻힌 김장독보며 기쁨 넘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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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2월31일.
대통령은 전국의 도로를 수리하는데 있어 온 국민이 앞장서줄 것을 호소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 동안 관에서나 민간에서나 모두공산군을 쳐부수고 승리하기 위해 싸우느라 가장 시급한 도로를 수리하지 못했다. 국민들이 피난하는데도 그렇고 필요한 구호물자를 운반하며군인 및 군수물자를 수송하는데 있어서도 도로보수는 퍽 긴급한 실정이다.

<망가진 도로 고치라>
우리가 승리할 수 있도록 전쟁을 수행하려면 도로사정이 좋아야한다.
얼마전 고랑포 근처의 전선을 시찰할 때에 길에는 트럭과 지프·탱크가 많이 다녀 도로가 패고 무너져 자동차가 다니기에 무척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다.
특히 군수물자를 수송하고 생필품을 운반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니 국민여러분이 솔선하여 길 고치는 일에 참여해주기 바란다.
무자비한 공산군의 참화를 피하기 위해 각자가 피난하느라 도로 보수할 겨를이 없었음을 잘 알고있다.
그러나 우리 한국사람들이 모두 피난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도로사정이 엉망인데도 남의 일 보듯 한다면 우리국군은 물론 만리타국인 우리나라에 와서 목숨을 바쳐 싸우고있는 유엔군들이 힘껏 싸울 수 있겠는가?
지금부터는 예산이 없느니, 경비가 없느니 하는 말을 하지 말고 내무부와 치안국을 주무부서로 각도지사와 각 군수의 책임하에 길 고치는 일에 착수하여 지역마다 하루 속히 도로개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를 돕기 위해 많은 물자를 보내주고 우리나라의 통일과 완전독립과 우리국민의 자유와 삶을 보장하기 위해 귀중한 생명을 바치고있는 우방의 군인들과 우리 국군을 위해 길을 고치는 일로 그에 감사하는 뜻을 표시하고 함께 도와 전쟁을 빨리 승리로 끝맺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
이 땅에 영원한 자유와 평화의 날이 하루 속히 앞당겨 올수 있도록 전국민은 모두가 도로를 고치는 일에 다함께 협조하기 바라는 바이다.』
국방장관은 우리에게 국민들은 대체로 보다 희망을 가지고 전황을 낙관적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쌀값이 6천원으로 올랐다. 전황이 호전되고 있다는 조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벌써 피난지예서 서울로 돌아오고 있다.
「리지웨이」장군은 철수하지 아니하고 반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요원의 불같이 퍼져나갔다.

<산포조차 없다니…>
「리지웨이」장군은 전선시찰을 끝내고 우리국방장관에게 중부전선과 동부전선의 우리애들이 사용할 수 없도록 일본으로부터 산포(산포)를 급히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리지웨이」장군은 산포가 일본에는 있는데도 한국에서는 그들이 그것을 가져보지 못했다는데 놀랐다고 한다.
우리는 이 말에 오히려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신국방은「워커」장군에게 한국군 각 사단이 너무나도 적은 수인18∼19 문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대포를 더 달라고 여러번 요청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워커」장군으로부터 대포가 없다는 말만 들어왔었다.
우리는 상오 11시 교회에서 예배를 보려고 정동예배당으로 떠났다.
그러나 있어야할 심야예배와 아침예배가 모두 취소되었기 때문에 교회에는 오직 우리 두사람밖에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한강을 향해 조금 차를 달렸는데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이 길을 가고있었다.
우리는 경무대로 돌아왔다.
점심을 들고나서 감시 쉰 후 우리는 경무대 뜰을 돌아보며 산책을 했다.
후정을 돌아볼 때마다 대통령은 그곳에 묻어놓은 김장독들을 바라보며 흐뭇해했었다.
나는 오늘 후정에 줄지어 차례로 묻어 놓은 김치독을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이제는 후퇴하지 않고 대통령이 우리경무대 동치미와 김장김치를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대통령은 해방 후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김장철에 김장을 담글 때마다 부엌식구들과 내가 김장하는 모습을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며 어린애처럼 기뻐했다.

<병원도 피난갈 준비>
내가 특히 멸치젓국 달이는 냄새가 경무대 방마다 밸까봐 걱정을 했을 때도 나와는 반대로 대통령은 맛있는 냄새가 구수하게 난다고 하며 오히려 즐거워했었다.
전시중이지만 내일이 설날이라 부엌에서는 안남미(안남미)로 가래떡을 만들겠다고 하여 나는 이것을 허락했다.
대통령은 떡국을 무척 좋아해서 미국에서 고생하며 독립운동을 할 때도 나는 설날아침에는 꼭 떡국을 끓였다.
오후에 우리는 가벼운 치료를 받기 위해 안식교회병원(주=서울 청량리 밖의 위생병원)의「조지·루」박사를 만나러갔다.
병원에서는 짐을 싸라는 지시가 내려져 있었다.
그전에 그 병원에 남아있던 간호원들은 모두 떠나기를 원하고 있으며 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군대가 그 건물의 일부를 접수하고 있다. 우리는 조용한 초저녁을 보냈다. 그것은 우리가 적들이 공격을 가해오며 그들의 선봉이 예와 같은 수법으로 우리전선에 침투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앉아서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기다렸던 대구의 나날들을 회상하게 했다.
크리스마스날부터 매일 미군들은 적은 왜 공격해오지 않는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상태의 준비를 위한 또 하루인 것이다.
크리스마스날 우리가 미군이 방어하는 전선을 방문했을때 우리는 서울에서 임진강까지의 길을 따라 설치해 놓은 대포와 탱크에 놀랐다.

<적공격 뜸해 의아>
다시금 미군은 지금까지 해오던 자기네 방식대로 전쟁을 위한 준비를 해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선뒤에서 몰래 움직이며 나팔을 불고 깡통을 두드리면서 후방을 공격하는 중공병사들을 막아낼 수 있는 준비를 갖춘 것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만난 장군들은 모두 자기가 구축한 전선을 아무도 돌파하지 못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밤에 우리는 중포(중포)의 포격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공격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오직 우리 군대가 적의 전선의 취약점을 공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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