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악화…EEC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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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영국·프랑스·서독을 비롯한 서방유럽의 10개국 정상들이 4일부터 6일까지 그리스의 아테네에 모여 EEC의 위기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회담을 가졌으나 끝내 결렬되고 말았다. 위기는 재정난에서 비롯됐다. 조만간에 어떤 해결책이 안나오면 EEC는 파산지경에 빠지게된다. 그렇게되면 지금까지 성공적인 길을 걸어온 EEC는 기능마비될 것이고 유럽통합의 꿈은 영원히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를 최악의 상황이 됐다.
재정난의 해결책으로 브뤼셀에 있는 EEC본부에서는 EEC로 거둬들여지는 부가세를 현행 1%에서 1.4%로 높일 것을 제의했다.
예산이 증액되어야 계속 역내의 농축산물에 대해 보조금을 지출할 수 있게된다.
그러나 EEC예산의 부담금 증액에 대해선 현행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일체 응 할수 없다고 영국이 앞장서서 반대했다.
영국은 예산배정이 불공평하고 지금의 농축산업에 대한 지원을 과감하게 축소하는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EEC의 예산은 EEC의회에서 회원국간에 만강일치로 결정을 보도록 되어있고 영국이 전체예산의 20%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발언권도 세다.
EEC의 올해 예산은 약2백10억달러. 그것은 주로 각국의 부가세에서 1%씩 떼어내는 부가세수입과 관세수입으로 조달되고 있다.
이 예산은 EEC내의 농업보조금으로 66%,지역개발비로 9.5%,각종 기금·EEC 경상비·기술개발지원자금등으로 나머지를 쓰고 있다.
영국이 예산제도의 개혁파농업지원의 축소라는 두가지전제조건을 내세우고 그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일체 예산증액에 반대하겠다고 하는 이유는 부담이 크기도 하지만 내는 돈이 엉뚱하게도 다른 회원국의 농민보조금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EEC예산중 영국의 부담은 올해 약 29억5천파운드(44억달러), 반면 EEC예산중 영국을 위해 쓰여지는 금액은 19억 파운드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연간 11억파운드의 거금을 EEC의 다른 회원국에 적선하고 있는 꼴이다.
너무 격차가 나기 때문에 일부를 돌려 받고는 있으나 영국으로서는 억울한 일임에 틀림없다.
EEC는 설립 당시부터 농산물의 자급자족과 농민보호라는 정치적 필요에서 농축산업지원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예산을 운용해 오고있다.
농축산업지원은 생산을 권장하기 위한 가격보조금 및 수출보조금, 시장가격이 하락할때는 가격이 유지되도록 높은 값으로 수매해주는 방식으로 실시되고 있다.
이러한 농업지원의 결과로 농민들이 마음놓고 생산해 많은 품목의 농산물이 EEC에 산적,남아 돌아가고 있다.
올해 농업지원을 위해 책정한 예산은 그래서 이미 9월중에 바닥이 나버렸다.
EEC예산으로 혜택을 보는 나라들은 농축산업의 비중이 큰 덴마크·이탈리아·네덜란드등이고 프랑스도 자기가 낸 돈은 고스란히 다시 찾아 먹을 만큼 톡톡히 혜택을 보고있다.
1인당 평균으로 나눠보면 영국과 서독이 약31달러씩 EEC에 적선하고 있는 셈이고 룩셈부르크가 약5백70달러, 에이레 1백80달러, 그리스 60달러, 덴마크 50달러, 이탈리아 27달러씩 각각 더 이득을 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영국이나 서독의 입장에선 불만이 없을 수 없다. 특히 영국은 1인당 국민소득으로 따져 EEC안에서 7번째에 불과한데 왜 생돈을 갹출해서 다른 나라 부자국민을 도와주어야 하느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있다.
한편 현행제도로 덕을 보고있는 나라들은 한사코 지금 제도를 계속해 나가자고 주장하고있다.
이 같은 이해상반의 입장때문에 이번 회의도 결렬된 것이다. 해결의 열쇠는「대처」수상이 쥐고 있는데 국내입장이나 여론으로 보아 양보할 처지가 못됐다.
결국 6개월후의 또 다른 정상회담의 숙제로 넘겨졌고 EEC는 절름발이 예산으로 시간을 벌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런던=이제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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