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사이비 로스쿨 도입은 개악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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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원래 로스쿨은 시대착오적인 사법시험제에 의해 파행화된 법학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것이다. 또 법률시장 개방 압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국민에 대한 사법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턱없이 부족한 우수한 법률가를 양성하자는 대안이었다. 따라서 이 제도의 핵심은 정원제한제를 통해 능력 여부와는 무관하게 낙방자를 양산하는 현행 사시제도의 족쇄로부터 법학교육을 해방하는 데 있다. 그리고 순발력 테스트 같은 암기력 시험이 아니라 체계화된 전문 교육과정에서 다양한 잠재능력을 개발한 예비 법률가로 하여금 국내외의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런데 국회에 제출된 로스쿨 제도는 법학교육 개혁안이 아니라 대법원 산하의 사법연수원을 대학에 이양하는 제도에 불과하다. 법안을 주도한 사법 관료들은 대학 이양만으로도 사법 개혁을 위한 대단한 양보인 양 생색내지만 이는 본말을 전도한 궤변이다. 원래 사법연수원은 판.검사 임용을 위한 제도이지 변호사 양성기관이 아니다. 변호사를 국가기관이 보수까지 제공하면서 획일적으로 양성하는 나라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연수원제는 사법제도 내에서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실현할 다양한 배경의 법률가를 양성하는 것을 방해한다. 즉 법률가 양성을 법조 관료체제가 독점하도록 함으로써 극복해야 할 사법권의 관료화와 법조 비리를 오히려 강화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현재의 사법연수원제는 폐지돼야 마땅하지만 그 대체물은 로스쿨이 아니라 법관연수원과 검사연수원이어야 한다.

로스쿨은 기초 학문의 세례를 받은 학부 졸업생을 상대로 학문 수련의 방법으로 '법률가의 사고방식'을 체득하게 해 양질의 예비 법률가를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로스쿨을 연수원 교육을 대체하는 실무교육기관이나 연수기관과 같은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로스쿨 졸업자는 변호사 사무소에서 일정기간 법률사무를 보조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실무능력을 함양하는 것이다.

법률시장은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세계화 시대에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새로운 성장동력의 하나다. 민주적 법치주의를 요구하는 헌법정신은 각계각층에서 법의 정신을 구현할 대량의 전문 인력을 요구한다. 선진 한국의 미래를 향한 비전을 잉태한 대안이 진짜 로스쿨이다.

그러나 현재의 로스쿨안은 연수원을 대체하는 낡은 관념에 묶이고, 변호사 수 증대를 원하지 않는 변협의 편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데 급급해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법조 양성체제를 답습하고 있다. 법조가 통제하는 총정원제를 통해 우수한 비전과 환경을 갖춘 대학마저 로스쿨을 개설할 수 없는 사실상의 허가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 제도 하에서는 국가의 특허를 받은 극소수의 로스쿨이 자격증만으로 삶의 승부를 걸려는 특권화한 법률가를 배출하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이 계속될 뿐이다. 더욱 위험한 것은 그나마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가꿔 온 상당수 법학교육기관을 존폐의 구렁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상실하고 사법 개혁의 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오히려 법학교육을 퇴행시키는 가짜 로스쿨안은 개악(改惡)이므로 진짜 로스쿨안으로 수정돼야 한다.

김종철 연세대·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