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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보국, 북한 고위 인사에게 접촉해 돈을 주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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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템스 강변에 있는 M16 본부(영국의 대외 정보조직). [사진 중앙포토]

영국의 해외정보국(MI6)이 북한 고위층 인사를 스파이로 포섭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돈과 비화(秘話) 전화번호를 건넸다. 그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제3국에서 비밀 접촉을 시도했다. 북한 핵무기 개발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였다. MI6 소속의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첩보영화 ‘007’ 시리즈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도 벌어진 셈이다.

이는 23일 알자지라 방송이 입수 공개한 수백 장의 세계 정보기관 문서 중 일부 내용이다. 문서는 2006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정보기관인 SSA와 다른 기관 사이에 오간 것으로 MI6는 물론 이스라엘의 모사드, 미국의 CIA, 러시아의 FSB 등이 포함돼 있다. SSA 요원들의 자체 분석 보고서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알자지라와 함께 보도한 영국의 가디언은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가안보국(NSA)의 무분별한 감시행위를 기술적으로 폭로했다면 이번 건은 정보원이나 내부 협조자 등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 정보”라고 평가했다.

MI6의 북한 인사 포섭 시도 역시 MI6가 SSA에 보낸 전문에 담긴 내용이다. MI6는 SSA에게 “북한 고위층 인사인 X가 남아공에서 항공편을 갈아타는 사이 잠시 X와 MI6요원이 만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위해 안전한 장소를 마련해 주고 X와 동행한 인사들이 이 사실을 몰라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X 자신이 SSA의 개입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도 했다.

MI6는 X와 1년 전부터 접촉했고 이미 2시간 정도 만난 상태란 걸 알렸다. 당시 액수를 밝힐 수 없지만 돈을 건넸고 그가 MI6의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쓸 수 있는 비화 전화번호도 제공했다는 사실도 함께였다. X는 그로부터 1년 여간 가타부타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MI6가 X의 남아공 환승 사실을 확인하고 그와 접촉하려한 이유였다. MI6는 “북한의 비밀 핵개발 프로그램을 파악할 절호의 기회”라며 “X는 귀중한 정보원(asset)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MI6는 SSA에 X의 구체적 신원을 제공했다. 그가 탈 항공기 편명까지 알렸다. 알자지라는 X의 신변을 우려, 이 같은 정보를 삭제한 채 보도했다. 이번 문서엔 작전의 성공 여부에 대한 정보는 담기지 않았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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