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프로] KBS의 자기반성 돋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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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뉴스 시간 내내 진상을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괴뢰(의 책동)' 운운하면서 광주시민을 위협하고 있었다. …화면 속의 광주는 어처구니없게도 평화로웠다. KBS는 국민을 속이고 진실을 감추는 데 성공했다. 끝까지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죄를 짓고 말았다."

지난 18일 오후 8시 KBS-1 TV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잠시 귀를 의심했을지 모른다. 'KBS 일요스페셜-푸른 눈의 목격자'(연출 장영주)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23주년을 맞아 당시 사건을 전세계에 자세히 알렸던 독일 기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KBS 측의 자기 반성적 태도였다. 과거 어느 특집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직설적인 표현이 적지 않게 등장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용감한 KBS, 다시 봤습니다"(ID andrew05) 등의 격려성 의견이 줄지어 올라왔다.

'푸른 눈의 목격자'는 1980년 5월 광주를 취재했던 독일 제1공영방송 ARD의 카메라기자 유르겐 힌츠페터의 이야기다. 그가 촬영한 내용은 50분짜리 다큐멘터리 '기로에 선 한국'으로 제작돼 그해 5월 22일 저녁 8시 독일에서 첫 방영됐다.

80년대 국내 대학가와 성당 등에서 몰래 상영된 이른바 '독일 비디오'가 바로 이것이다. 이 일로 인해 한국 정부의 감시 대상이 된 힌츠페터는 86년 서울의 한 시위현장에서 사복경찰에게 집단구타를 당했고, 그 후유증 때문에 기자생활을 끝내야 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은 두달 반 전쯤. 장영주 PD는 "언론 보도에 관한 이야기라 KBS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는 의미가 없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솔직히 과거 같으면 그런 내용을 넣을 때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다큐멘터리는 기념식 중계를 빼면 TV프로그램으로는 올해의 유일한 5.18 특집 이었다. 이렇듯 5.18은 이미 잊혀져가는 '역사'가 돼버렸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시청률이 10.4%(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로 다큐멘터리로서는 높은 편이었고 방송이 끝난 뒤 "다시보기 서비스를 빨리 올려달라""재방송해달라"는 네티즌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방송사의 제작 태도와 접근 방법에 따라 시기성 특집을 '뻔하지 않게'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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