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탈한 태도·진실이 담긴「레이건」에 연설에 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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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스꽝스런 얘기지만 한국에 오는 미국대통령 「레이건」 에 대해 내가 깊이깊이 생각하고 실감한건 지난 12일상오 서울서소문에서 40분 이상을 갇혀있으면서였다.
『지하도 하나만 건너면 내 목적지로 가는데…』하면서 텅빈 길을 바라보며 경찰과 사복요원들의 울타리속에서 애를 태웠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나도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레이건」 대통령이나 환영하자-이런 생각을 하며 이제나 저제나 리무진과 경호차 등등이 올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언제 그의 차가 지나갔는지 감도잡지 못한채 싱겁게 풀어진 통금으로 길을 건너게 되었다.
이날밤 이후 계속 밤이면 TV뉴스 시간에 「레이건」과 그의 부인 모습이 비쳐졌다.
신문도 이런 저런 모습을 열심히 담아보였다.
옷맵시가 어쩌면 그리 근사한지, 제스처는 또 얼마나 자연스럽고 멋이있는지….
양복과 넥타이·머리모습, 소탈하고 격의없이 옷음짓는 표정, 국회에서 연설할때의 태도… 등이 정말 나무랄데도, 트집잡을데도 없는 것이었다.
더우기 나로 말하자면 20년이상을 이 지구상의 천국으로서의 미국인으로서 더할수 없는 선망과 열등감을 느끼며 살아온 여자다.
그가 대통령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는 그저 멋진 이성이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홀딱 빠져버렸을 것이다.
아, 「레이건」은 일찌기 영화배우였었지, 또 무슨 운동선수였고 학생회장이었었다고 하더라….
그렇지만 우리가 감동하는것은 그가 세계 최강국의대통령이라는, 세계에 권력의최정상에 있는 인물이라는사실도, 70이 넘은 고령이지만 아직도 남성다운 멋진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도 아니다.
그 솔직하고 소탈한 행동과 진실이 담긴 연설과 대화들이 우리의 마음에 와닿는 때문이다.
방한 이틀째인 13일 중서부 최전방에 있는 콜리어관측소에서 쌍안경을 통해 북녘땅을 바라보는 「레이건」대통령의 모습은 가까운 우방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성실한 태도였다.
캠프 리버티 벨에서 군용파커차림으로 병사들과함께 일요예배에 참석, 고개숙여 기도하는 모습은 자못 가슴물클한 것이었다.
「레이건」 은 마치 자로 잰듯이 48시간을 보내고 떠났다.
전방에 가서는 세번옷을 갈아 입었다.
떠날때 비행기트랩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 또한 감동적이었다.
자신의 커다란 손을 흔들다가 그것도 성이 차지 않아 굳게 마주잡아 보이는데 나는 감동을 하지않을수 없었다.
인상적인 영화의 특별한장면에 대한 감동적인 기억은 오래두고 지을수 없듯이 그의 그런 모습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것 같다.
「레이건」 대통령과 「낸시」여사의 각별한 부부에 또한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아름답게 내눈에 비쳤다.
가까운 거리를 걸을때도 두손을 꼭잡은 모습이라든가, 대통령이 국회연설을 할때 그윽히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모습등.
나이들어도 퇴색하지 않은 맑은 부부의 사랑은 싫증하지않는 고전을 대하는 즐거움을 맛보게하는 것이었다.
경복궁뜰에서 우리민속무용등을 관람하는데 화면가득채운 깔끔한 모습의「낸시」 여사의 옆열굴은 한폭의 서양인물화 같았다.
그녀는 한국을 떠날 때 심장이 나쁜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양쪽 손에 잡고 있었으며, 그 어린이들도 손을 흔들였다.
미국의 어느 교수는「레이건」 의 한국방문이 자유세계의 최전방엘 간 것이라고 표현했다.
자유세계의 최전방으로서의 대한민국, 불가피한 운명이리라.
그러나 나는 유능한 대국의 최고책임자가, 자유세계의 최전방이기 이전부터 존재하는 한반도·한국민족을 그 자체로써 느끼고, 경험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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