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 우리가 그들에게 반한 시간 ④ 지용진 기자의 가슴뛰게 한 한마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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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 기자들의 특별한 인터뷰

[베네딕트 컴버배치 2013년 5월│13호] “내 마음 속에는 아직까지 열 살짜리 꼬마가 살고 있다.”

2013년 5월 런던에서 열린 ‘스타트렉 다크니스’(2013, J J 에이브럼스 감독) 프리미어 행사 때 베네딕트 컴버배치(39)를 인터뷰했다. 전 세계 매체를 대상으로 한 행사였고, 출연 배우들이 여러 국가에서 온 기자들을 차례로 만났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한국 매체와 만난 시간은 오후 4시. 이미 다섯개 매체와 인터뷰를 마친 상태였다. 그는 인터뷰 룸에 들어와 의자에 앉자마자 양복 재킷 속주머니에서 꾸물꾸물 뭔가를 꺼냈다. 초콜릿이었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하나씩 나줘주며 “먹고 시작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초콜릿을 입에 넣은 컴버배치의 표정이 순간 환해졌다. 그의 말처럼, 컴버배치의 마음에는 꼬마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준익 감독 2013년 10월│33호] “영화가 관객에게 답을 제시한다는 건 오만이고 위선이다. 좋은 영화는 관객들에게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던지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원’(2013) 개봉을 앞두고 만난 인터뷰에서 이준익(56)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 ‘소원’은 이준익 감독이 연출을 망설였던 영화다. 아동 성폭행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게 불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공개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던 터라 자신의 말을 번복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내서” 메가폰을 잡았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끔찍한 사건을 겪은 피해자라도 꿋꿋하게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그의 의도대로 영화는 소재를 상업화하지 않았고, 인물을 작위적으로 남용하지 않았다. 덕분에 영화에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위로와 희망이 담뿍 담겼다. 이준익 감독은 솔직하고 거침없다. 자신의 약점을 남 앞에 드러내기를 꺼리지 않는다. 그와의 인터뷰는 감독과 기자의 관계가 아닌 인생을 먼저 살아 온 선배와 후배가 나누는 대화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말한 ‘좋은 영화’의 의미를 곱씹어 봤다. 메시지를 강요하는 영화가 넘쳐나는 시대에 중견 감독의 이 한마디는 내 마음에 긴 여운을 남겼다.

[남상미 2014년 10월│83호] “연예계는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잖나. 상대방보다 더 돋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그런 게 서로를 괴롭히는 기준을 만드는 것 같다.”

배우나 감독을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심심찮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누가 제일 예쁘냐(또는 잘생겼냐)’ ‘누가 매너가 좋냐’ 등등. 사실 외모는 관점이나 취향에 따라 주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으니 대답을 피하는 편이다. 내가 대답하면 상대방이 ‘어? 그래’라면서 ‘나는 아무개가 예쁘던데(또는 잘생겼던데)’라고 해버리면, 대화가 끊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소모적인 대화는 찬밥만큼 매력 없다. 하지만 질문이 바뀌면 얘기가 달라진다. “솔직한 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주저 없이 답할 수 있다. 바로 남상미(31)다. 그녀는 솔직함이 몸에 배어 있는 듯하다. 가끔 여배우들을 만나면 소위 ‘연예인병’ 때문에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인터뷰에 나왔지만 말을 아끼는 배우들인데, 최근에는 여배우 H가 그랬다. 얼어붙은 마음을 해동시키기까지 꽤 오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남상미는 달랐다. 진솔하고 털털했다. 그가 말한 ‘서로를 괴롭히는 기준’은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게 마련이다. 그 진심 어린 말에서 한 여배우의 고단함을 느꼈고, 그래서 더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지용진 기자, 사진=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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