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이주시기 조정 실효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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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일기자] 지난해 10월 30일. 정부는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 방안’을 발표하고 재건축·재개발 이주 시기를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재건축 이주 수요가 한 데 몰려 전세난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던 때다. 그래서 정부는 같은 동(洞) 내에서 여러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이 동시에 이주할 경우 이주 시기를 조정하겠다고 했다.

이어 서울시는 지난해 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르면 재건축 단지의 이주 시기 조정 대상을 500가구로 완화했다. 또 같은 동 내에서 6개월 안에 관리처분 인가를 받은 가구 수가 2000가구를 넘으면 이주 시기 조정 대상이 된다.

이 경우 서울시 이주시기조정위원회에서 최대 1년까지 이주 시작 시점을 늦출 수 있도록 했다. 2000가구가 넘는 단지만 이주 시기를 조정할 수 있었던 이전 조례에 비해 대상 단지가 한층 많아진 것이다.

서울시 “이주 시기 분산 유도”

예컨대 강남구 개포지구의 경우 주공1단지(5040가구)와 4단지(2840가구)만 2000가구가 넘고 나머지 3개 단지는 2000가구 이하여서 이들 3개 단지가 줄줄이 관리처분 인가를 받고 이주에 들어가도 조례 개정 전에는 이주 시기를 조정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2단지(1400가구)가 이달 초 관리처분 인가를 받은 가운데 현재 관리처분 총회를 준비 중인 3단지(1160가구)와 시영(1970가구)이 오는 8월 안에 관리처분을 신청하면 이주 시기 조정 대상이 된다.

강동구 고덕동 일대 고덕지구는 상황이 조금 복잡한 데, 같은 주공 아파트라도 2단지는 고덕동이고 3~7단지는 상일동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미 2850가구의 2단지가 관리처분 인가를 받았지만 3~7단지의 이주 수요 조정에는 영향이 없다.

만약 5~7단지(각각 880~890가구) 중 한 단지가 6월까지 관리처분 인가를 받더라도 지난해 말 인가를 받은 4단지(413가구)와 합쳐 총 2000가구가 넘지 않으므로 이주 시기 조정 대상이 되지 않는 셈이다.

서울시 측은 “500가구를 초과하는 재건축 단지는 관리처분계획 인가 신청 이전부터 조합과 지속적으로 의견조율을 해나갈 것”이라며 “최대한 자율적인 협의를 통해 이주 시기를 분산시킬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양한 방법 찾아야

그러나 이주 시기 조정을 두고 벌써부터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사업 속도가 비슷한 단지가 인접해 있는 경우 어떤 단지부터 얼마나 이주를 늦출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가뜩이나 공공관리제로 공공 개입에 대한 불만이 높은 상황이어서 어설프게 서울시가 끼어 들면 갈등만 키울 수 있다는 조심스런 입장이다. 이주시기 조정만으로는 전세난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신한금융투자 투자자문부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재건축 초과 이익환수제 영향으로 사업 속도가 비슷한 단지가 적지 않다”며 “이주 시기 조정이 되레 전세난을 연장시키는 역효과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주 조정 대상 단지가 아니라도 이주 기간을 길게 잡아 관리처분 인가를 조건부로 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예컨대 개포지구 2단지는 6월까지 이주를 완료할 예정인데 적어도 12월까지 이주 기간을 늘려 인근의 민간 및 공공임대 아파트 입주 시기와 맞물리도록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포지구에선 인근 래미안 대치 청실 아파트 1608가구가 10월 입주하는 만큼 적어도 이때까지 이주 기간을 늘려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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