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망하는 공기업'있어야 개혁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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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것은 공기업의 체질 개혁이 질타와 비판, 그리고 단기 대응적인 처방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공기업 문제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공조직의 속성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문제다. 공기업의 생산성이 민간기업에 비해 낮은 이유는 무엇보다 경쟁과 도산의 압력이 없다는 데 있다. 게다가 직원들은 정년과 신분이 보장되고 일 잘한다고 해서 더 생기는 것도 없지만 잘못해도 덜 받을 일이 없다. 그러면 당연히 사람들은 시키는 일만 하다가 주는 대로 받고 퇴직 연금만 기다리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아무리 유능하고 부지런한 사람도 이런 분위기에서는 창의력을 발휘하거나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다.

공기업뿐 아니라 민간기업이나 어느 조직이라도 경쟁과 퇴출의 압력이 없다면 근본적으로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질타와 비판만으로 효율성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공기업 개혁의 첫 단추는 공기업 조직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경쟁과 퇴출의 압력에 노출되도록 공기업이 속한 산업구조를 항구적으로 바꾸는 것이 돼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기업 조직에 대한 개혁이 아니라, 공기업의 존폐 여부와 정부소유 여부를 포함해 공기업이 담당해 온 공공기능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다.

공기업은 공익목적을 위해 설립됐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공익목적의 달성을 위해 반드시 공기업이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도 교육.의료.에너지.주택.교통.건설.방범.택배.쓰레기 수거 같은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서 민간조직이 정부조직과 경쟁하면서 공익을 잘 달성하고 있다. 공익은 공조직만이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은 검증되지 않은 미신이다. '역사적 임무를 마친 공기업은 사라져야 한다'는 전윤철 감사원장의 언급은 이런 점에서 매우 정확한 지적이다.

현 정부가 취임하자마자 역대 정부가 정파와 정권을 초월해 십여 년간 추진해 왔던 공기업 구조개혁과 민영화 정책을 공공노조와 노조에 편향된 집권 측 인사들의 요구에 의해 중단시킨 것은 현 정부의 최대 실책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진보와 개혁을 내세웠던 현 정부가 우리 사회의 어느 부문보다 변화와 개혁에 소극적이고 우리 사회의 견고한 기득권 세력의 하나인 공기업과 공공부문의 편에 서서 공기업 개혁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아직도 국민에게 공기업은 정부의 일부분이고 권력이다. 그래서 공기업 사장과 임원은 높은 분들이고 공기업이 하는 일은 공권력 행사로 받아들여진다. 공기업이 하는 일은 민간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지녔고 국민은 지시와 통제의 대상일 뿐이다. 과거에 한국통신도 그랬고, 포항제철도 그랬다. 그러나 이 회사들이 민영화된 지금 어느 국민도 이 회사들이 하는 일이 이권이나 권력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민영화된 이 회사들은 이제 국민을 고객으로 받들고 있고, 국제경쟁력을 가진 우리 경제의 선도기업들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전력공사나 가스공사, 철도공사와 같은 공기업들은 아직도 국민에게는 권력이고 거기 임원들은 고위 공직자일 뿐이다. 공기업들을 정치인과 관료, 그리고 공공 노조로부터 국민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