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로 이사간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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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년전 산골로 이사간 친구가 있다. 산을 개간해 과일나무를 심었는데 왔다갔다하기 번거로와 아예 그곳으로 이사를 해버린 친구·그 친구의 초청을 받아 우리 다섯 엄마들은 잠시 일손을 멈추고 가을 나들이에 나섰다. 바깔엘 나기지 않더라도 아침저녁 싸늘한 기온과 화단의 국화, 시장길목 시골아낙들 치마폭 앞에 나열된 쑴바귀며 찜고추·과일 등에서 가을이 짙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오르막 산길에 들어서니 맨 먼저 길섶의 청초한 들국화가 소슬 바람에 간들거리며 우리를 반겨 주었고 알밤 떨구어낸 밤송이는 그 무엇을 채우고 싶어 빈 입을 그리도 크게 벌리고 있는지. 사과나무 밑에 심어 놓은 고구마·땅콩의 잎줄기 사이로 갈라진 흙. 이 모든 것이 마지막 갈무리를 재촉하는 것 같은데 모과는 아직도 연두빛깔로 태평세월이다.
울타리에 가시철망도 치지 않고 탱자나무도 심지 않은 과수원길 따라 올라가노라니 친구가 마중 나와 반기며 우리를 산장으로 안내했다. 누렁이가 짖어대는 옆 커다란 외양간에서 눈만 껌벅이는 다섯마리 소, 기계화된 영농으로 개보다 더 편해진 소의 등가죽에 윤기가 돌고 정다이 풀을 뜯다 먼 산 뻗어보는 염소들의 한가로움 위로 두둥실 흰구름이 떠가는 파란 하늘을 보며 나는 장시 행복한 가을의 에트랑제가 되었다. 친구가 정성스레 차려준 칼국수와 밤, 사과를 먹으며 이야기꽃이 피워 졌다. 두통 때문에 그리도 고생하더니 일꾼 없이 과수원일과 가축을 돌보다 보니 아플 짬이 없더라고 웃었다.
땀흘려 일할땐 고달프기도 하지만 풍성한 수확 앞에 그저 즐거운 비명이라고 한다. 나는 심는자 만이 거두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였고 땀의 댓가는 반드시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시골로 이사갈 때 후회할거라고 만류했던 우린 부끄러웠다. 무조건 도회지를 동경하는 많은 사람들. 좀더 편한 생활을 바랐고 그래서 불만도 터뜨렸던 나. 그의 생활태도에서 나를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삶의 진가를 생각케 하는 값진 가을 나들이였다. 박순혜 <경북 상주군 상주읍 인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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