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생일선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지난 월요일은 내가 마흔이 되는 생일이었다. 언제나 처럼 아침 출근길에 배웅하려는 나에게 가벼운 입맞춤과 함께 생일을 축하한다며 그이가 흰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받아 쥔 봉투를 뜯어 보니
-더욱 성숙한 나날을 보내기 바라오. 열심히, 그리고 충실히 삽시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중요한 때가 되었소. 생일을 축하하오. 당신의 남편으로부터.
내용을 읽어가며 난 무엇인가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다.
『지페라도 한 장를 넣어줄 것이지.』
못내 섭섭함을 지니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 지금 사고났어. 좀 나와 주어야 겠어.』
나는 성급히 수화기를 내려 놓고 사고지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것이 어인 일인가. 차는 뒷부분이 아예 망가져 있었고 운전석도 그냥 핸들에 처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언뜻 보아 운전하던 사람이 무사해 보이지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은 인도에 버젓이 서서『놀라지 마. 나 여기 있어』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모든 사무처리를 보험회사에 맡기고 병원으로 가 진찰하고 X레이 사진을 63장이나 찍었다. 그런데 정말 다행으로 그이는 목 뒤쪽에 약간 상처가 났을 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세 아이들이 저희 아빠를 끌어안으며 환영했다.
『아빠, 정말 괜찮아요?』
몇 번씩 확인해보는 딸아이는 눈물이 맺힌 채였고, 나도 그제야 긴장이 확 풀어지며 심신이 나른해져 왔다.
-하느님, 저에게 준 생일선물에 감사합니다. 지페 한장 정도의 선물을 바라고있었던 나의 어리석음이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