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동네축구'같은 FA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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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 경기는 오후 1시로 계획돼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26일 수원 삼성-수원시청의 32강전이 야간조명이 없는 경기장에서 어두워진 후에도 계속됐고, 이에 대한 비판이 따르자 대한축구협회가 갑자기 경기시간을 당겼다. 조명시설과 일몰시간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선수들에게 돌아간 것이다.

이뿐 아니다. 원래 2일 예정된 울산 미포조선과 대전 시티즌의 16강전은 미포조선의 3일 베트남 국제 친선축구대회 참가로 연기됐다. 대전 측은 "협회의 연기 통보로 훈련계획이 엉망이 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협회 측은 "미포조선의 친선대회 참가는 먼저 정해진 사안이고 FA컵은 남북축구, 아드보카트 감독의 대표팀 소집 등에 밀려 계속 일정이 연기됐었다"며 미포조선의 연기 요구를 받아줬다. 협회는 재경기 일정조차 잡지 못하다가 친선대회가 끝난 5일 후인 21일 경기를 치른다고 뒤늦게 발표했다.

프로와 실업, 대학과 아마추어 등 한국 최고의 클럽팀을 가리는 FA컵. 그러나 대회 진행을 지켜보면 마치 동네 축구대회 같은 생각이 든다.

매년 FA컵은 정규리그에 밀려 추운 날씨에 썰렁한 관중석을 배경으로 치러졌다. 지난해 결승전은 성탄절에 벌어졌다. 내년에는 상금 규모도 늘리고 여름부터 대회를 치르자는 목소리가 협회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협회와 축구계의 '혁명적인 발상전환'이 없는 한 내년을 기약하기도 힘들 듯하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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