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지갑 거머쥔 2030 그녀들의 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지난달 31일 서울 청담동 한 레스토랑에서 모델 겸 탤런트인 다니엘 헤니(27.사진)를 만났다. 그가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식당 안에 있던 젊은 여성들은 일제히 헤니에게 열광했다. 요즘 광고 업계에서 나도는 '헤니 효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헤니효과란 헤니가 나오는 광고 효과를 일컫는 말이다. 그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출연한 이후 광고 모델로 상한가를 치고 있다.

현재 그가 출연하는 광고만 이동통신.자동차.항공사.홈쇼핑 등 5~6개에 이른다. 2일 다국적 화장품 기업 로레알도 헤니를 남성화장품 '비오템 옴므'의 모델로 발탁했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그의 이미지가 구매력이 있는 20~30대 여성을 공략하기에 좋다고 평가한다. '다니엘 헤니'라는 상품을 사기 위해 여성들이 기꺼이 지갑을 연다는 것이다.

헤니 효과는 그가 광고에 출연하는 회사의 매출액 상승으로 나타난다. 9월부터 헤니가 출연한 광고를 방영 중인 제일모직의 캐주얼 브랜드 '빈폴'의 9~10월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1% 늘었다. 상반기 매출 증가율은 8%였다. GM대우는 9월 출시한 '젠트라' 광고에 헤니를 출연시키고 있다. LG텔레콤 휴대전화 '싸이언'은 헤니를 섭외한 뒤 광고 내용을 구성했다. 일반적으로 광고 컨셉트를 정한 뒤 모델을 구하는 것과 반대다.

광고 효과만큼 헤니의 몸값도 뛰었다. 업계에 따르면 올 초 드라마에 출연하기 전만 해도 그의 광고 출연료는 5000만원 선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금액의 10배 정도가 뛴 A급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자 모델들이 독식하다시피 해온 톱 모델 그룹에 남성 모델이 끼게 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헤니는 "여성 소비자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나 같은 남성 모델이 인기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런 점에서 능력 있고 적극적인 여성의 경제 활동이 늘어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업계도 헤니가 잘 팔리는 이유를 소비 계층의 변화로 설명하고 있다. 광고회사 웰콤 권미경 부장은 "맞벌이 부부와 싱글 여성이 늘면서 20~30대 여성의 구매력이 크게 증가했다"며 "남성들이 돈을 쓸 때는 여자 모델이 잘 팔렸는데 헤니 효과는 그 반대 현상"이라고 말했다. 크리에이티브에어 최장훈 부장은 "헤니가 광고하는 상품은 화장품.휴대전화.자동차 등 값비싼 것이 대부분"이라며 "여성 소비자의 씀씀이 규모와 구매 결정력이 커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헤니는 자신의 인기 이유에 대해 "한국의 가부장적인 남자들과 다른 모습 때문일 것"이라며 "한국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역동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일기획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2635세대' 조사에 따르면 26~35세 싱글 여성은 한 달 평균 40만원을 의류.통신.취미에 쓰고 있다. 이 조사를 한 제일기획 이세진 박사는 "기업들도 이들의 특성을 겨냥한 마케팅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홍주연, 사진=김성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