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쓰다 법공부…「양극」의 조화 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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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내가 처음 시를 습작할 때가 60년대 전반기이니 50년대 이후의 혼란스러웠던 시와 시론을 접했고, 내 나름대로 어설픈 시론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습작했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김춘수시인의 한국시 형태론과 조향, 김광림·전봉건시인 등의 기교주의와 시론으로서의 「지성의 향연」이라는 말에 많이 관심을 두었던 것 같다.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시인될 희망-그것이 아니면 나의 인생은 암흑일 것이라는 절망감-에서 시를 썼다. 그런데 시를 쓸수록 뒷맛이 씁쓸하고 공허하기만 했다.
그 후 나는 전혀 우연히 (물론 필연적 운명이었겠지만)법을 공부하게 되었다.
시를 잊은 채 혹독한 세월을 보내기 6, 7년 후 어느 겨울 산속 암자에 있을 때 곱게 내리는 첫 눈으로 깊은 산속은 곱고 고운 설화(설화)가 만발하였다.
잊어버렸던 시가 갑자기 은근히 쓰고 싶었다. 비로소 시심이 열린 것일까. 한편의 시를 쓰고 나서도 씁쓸하거나 공허하지는 않았다.
그 이후 나는 시를 무상(무상)의 행위로서 굴레가 될 어떤 의미를 지우는 일을 삼가고 있다.
주위에서 염려하듯이 시와 법이 한인간 안에서 전혀 조화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양극적인 것이니 조화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인간의 내면에는 모든 것에 꼭 양극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싶다.
한쪽 극은 다른 극의 바탕이 되고 상호 보족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다.
나의 시를 시이게 한 것은 법이다. 마치 딱딱한 암반이 지표수를 맑은 지하수로 걸러내듯이 나의 시에서 치기 어린 이성(또는 지성)의 찌꺼기와 거추장스러운 기교를 걷어내고 읽은 감성과 가락만을 남게해 준 것이 법이다.
나의 전 인생이 나의 시의 바탕이라면 그중에 법도 나의 시의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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