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도 많은 외국인묘지|고종주치의가 처음 묻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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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배열, 연세대를 창립했던 원한경박사등 술한 「서양은인」 들이 묻힌 외국인묘지 (서울합정동114)일부가 지하철2호선 공사로 잘려나가게 됐다.
서울시는 4천7백여평의 묘역가운데 공사에 쓸 6백여평의 땅값으로 3천6백만원을 책정했으나 이 묘역이 주인없는 땅이어서 보상금마저 건네주지 못하고 있다.4백20여기의 외국인무덤이 들어선 이곳은 93년전인 1890년7월 고종황제의 주치의였던 「존· 헤론」(John·W·Heron) 이라는 미국선교사가 숨지자 고종이 『이분읕 경치좋은 양화진에 묻어드리라』 는 분부를 계기로 외국인만 묻히는 묘지가 되었다.
한강이 굽어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이다.
「대한매일신보」 사장으로 필봉올 휘둘러 일제의 침략야욕을 규탄했던 영국인 배열을 비롯, 연세대와 새문안교회를 설립한 원한경박사부부, 배재학당을 설립하고 이화여대명예총장을 지낸 미국출신여류교육가「아펜젤러」(Alice·R·Appenzeller) ,「독립신문」 의 발간읕 돕고 우리나라의 첫 세계지리책인 『사민필지』를 한글로 펴낸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 (Homer·B·Hulbert) 등 많은 외국인이 이 묘역에 묻혔다.
이중 「헐버트」 는 이승만 전대통령과 의형제를 맺기도 했으며 1949년에 숨을 거두면서 남긴 유언대로 그의 비석에는 『나는 웨스트민스터사원보다도 한국땅예 묻히기를 원하노라』 는 묘비명이 새겨져있다.
또 배열의 비석에는 일제의 악랄했던 흔적이 아직도 역력히 남아있다.
높이2m ,넓이45m ,두께25cm의 검은돌(흑요석)로 된 그의 비석 뒷면에는 안타깝게도 그 내용이 전해지지 않으나 장지연등이 배열의 업적을 기려 새긴 비문이 있었는데 일제는 이를 깡그리 쪼아내 버렸다는 것이다.
4백20여 외국인 무덤중 절반쯤인 2백여 무덤이 미국인둘의 차지. 그밖에 영국·프랑스·러시아·이탈리아·덴마크·캐나다등 13개국의 사람들이 이곳에 잠들어있다.
이 묘지에는 일본인도 한사람 있다. 「소오다」(보전가이) 의 무덤이 그것. 그는 「영락보린원」이라는 고아원을 셜립하고 많은 한국고아들을 돌봐주어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소아선생」 「고아의 자부」 로 불렸던 인물.
가장 여러대에 걸쳐 이곳에 무덤을 쓴 집안으로는 단연 「언더우드」가. 원한경부부로부터 현재 연세대 이사인 그의 손자 원일한씨의 부인 (Joan·Vida·Underwood)까지 이곳에 묻힘으로써 3대에 걸치게 된것.
현재 이 묘지는 이강필씨(47) 가 외국인묘지 관리위원회로부터 매달 14만원을 받아 생계를 이으며 돌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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