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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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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인구조사가 서양에서 죄악이 된 것은 다윗 왕 때문이다. 다윗은 어느 날 군사령관인 요압을 불러 병적(兵籍)을 조사하라고 했다. 요압은 "왜 이스라엘이 죄받을 짓을 하느냐"며 말렸다. 다윗이 뜻을 굽히지 않자 요압은 9개월20일간 조사한 뒤 '무기를 가질 수 있는 민병대 인원이 이스라엘은 80만 명, 유다는 50만 명'이라고 보고했다.

야훼께서 진노하자 다윗은 "제가 못할 짓을 했습니다. 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빌었다. 그러나 야훼의 응답은 단호했다. 세 가지 재앙 중 하나를 골라 받으라고 했다. 삼 년간의 가뭄, 석 달간 적의 칼에 쫓기는 것, 사흘 동안 온 나라에 역병(疫病)이 창궐하는 것이었다. 다윗은 세 번째를 택했고 전염병이 돌아 사흘간 7만여 명이 죽었다.

성경 어디에도 인구조사를 금하는 계율은 없다. 그런데 왜 다윗은 벌을 받았을까? '새 옥스퍼드 주석 성경'을 펴낸 신학자들은 야훼만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통제권을 다윗이 넘보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인구수를 아는 게 곧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이었던 셈이다.

이때부터 인구조사는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는 일'이 됐다. 윌리어 코벳의 '영국의회사'는 1753년 한 의원이 "다윗에게 내린 처벌이 우리에게 내릴까 두렵다"며 인구조사를 반대했다고 적고 있다. 1712년 뉴욕 주지사는 "어떤 식으로든 인구수를 세고 나면 반드시 질병이 찾아왔다"며 인구조사를 거부했다.

이런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18세기 말이다. 1789년 미국은 새 헌법에 10년마다 인구조사를 하도록 못박았다. 주지사 수를 인구에 비례해서 뽑기 때문에 정확한 인구를 알아야 했다. 1년 뒤 최초의 근대적 인구조사가 이뤄졌다. 전염병은 돌지 않았다. 미국의 통계사학자 핼런 워커는 "다윗의 죄를 반복하다가 천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미국이 인구조사 이후에도 계속 번창함으로써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1일부터 인구주택 총조사가 시작됐다. 이번엔 처음으로 장애인 현황도 파악한다고 한다. 선진국들은 수십 년 전부터 냈던 통계다.

하버드대 석좌교수였던 버너드 코언은 "정확한 인구를 아는 것이 국가 관리의 시작"이라고 했다. 우리의 국가 관리, 기초부터 되돌아봐야 할 때다.

이정재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