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유대 다지는『놀이』가 없다|잃어버린 우리의 민속 되찾아야 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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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주 옛날 사람들의 신나는 삶의 바탕에는 공동체에 뿌리를 내린 「놀이」가 있었다. 철 따라 흥겨운 세시풍속으로 때마다 돌아오는 명절도 외롭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놀이다운 놀이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살고있다. 놀이란 원래 스스로 노는데서 만족감을 얻는 것인데 이게 소수 놀이꾼들이 놀이를 구입해 구경하는 것이 놀이가 돼버렸다.
역사가「호이징하」는「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라는 등 「인간의 문화와 역사란 놀이라는 뿌리 위에 자라는 하나의 줄기에 불과하다」며 인간사회에서의 놀이의 중요성을 설파했지만 일찌기 우리의 옛어른들은 이점을 터득했었다. 고대에는 왕과 신하, 백성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거국적인 놀이판을 벌였다. 거기서 우리 겨레는 하나의 피붙이임을 확인했고 서로 가진 신명과 흥겨움이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를 토대로 문화적 공동체를 다져왔다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놀이에 대한 고질적인 편견은 그 후에 생겨났다.
임재해 교수(안동대·민속학)는 백성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여긴 중세의 통치자들은 놀이를 부도덕한 것으로 몰아세우는 봉건적 도덕률을 내세워 이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다』고 지적하고 『일제는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단결된 힘을 흐트러뜨리는 가운데 식민지정책을 수행하고자 동채싸움·편싸움(석전)같은 대규모 민속놀이를 민중집회의 금지라는 명목아래 중단시켜버렸다』고 설명한다.
이때 중단된 민속놀이들이 아직도 그 맥을 잇지 못하고 박제화돼 있는 것은 해방후의 사정이 놀이의 건강성을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호전되지 못한 탓이라고 밝힌 그는 이제 대중매체를 이용한 의도적인 놀이조작 때문에 건강한 놀이문화를 되살려야한다고 믿는 사람들조차도 거대한 대중조작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드는 형편이라고 우려했다.(『세계의 문학』가을호)
건강한 놀이란 놀이꾼과 구경꾼의 가름 없이 한데 어울려 즐기는 가운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놀이 공동체로서의 유대를 다지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구실을 해야한다면, 오늘날 놀이의 현장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소수의 직업적인 놀이꾼들과 레저산업의 상업주의에 밀려 놀이의 주체자, 놀이의 생산자 노릇을 해야할 민중은 놀이의 객체이자 소비자로 전락했다. 기껏 쌓인 피로를 푼다는 구실아래 대중문화의 찌꺼기인 저급한 놀이들을 돈으로 바꾸어서 향유하는게 고작이다.
임교수는 오늘의 어른들은 집과 마을을 멀리 떠날수록 고급스런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꼬집고, 마을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후미진 곳을 찾아야만 자기들만의 놀이를 은밀하게 즐길 것을 기대하고있는 형편에선 지역공동체로서의 유대는커녕 가족의 화목까지도 깨뜨리는 부작용만 낳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집과 마을을 떠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공동놀이를 찾고, 아이들에게도 전자오락실에서의 기계와의 대결보다는 또래끼리 유대를 맺으면서 자연과 친해질 수 있는 놀이를 찾고, 아울러 일본식의 식민지적 놀이풍속과 서구식의 시대적 놀이풍속을 함께 청산하는 길을 진지하게 모색할 때가 아닌가.
많은 학자들은 오늘의 놀이를 건강하게 살리는 길은 민속놀이에서 발견한 건강성을 창조적으로 수용하는데 있다고 보고있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인식 위에서 향토축제협의회 같은 곳을 중심으로 다수 학자들의 활약도 눈에 된다. 그러나 이 문제는 보다 포괄적인 시각을 요구한다. 산간벽지까지 휩쓸며 모든 민속적인 것을 파괴하는 대중문화와의 긴장관계, 건강한 놀이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함께 커나갈 공동체의 건설문제 등은 우리의 신나는 놀이를 회생시키기 위해 선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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