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행 과민불안감 탓|과오 절대 시인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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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련은 미국에 대해 두려움을 품고 있으며 공포감에 사로잡혀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만이 하는 식으로 미국에 대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을 존경하고 찬미하기를 바라면서 우리가 그런평가를 하지 않을것을 알고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그들은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하기를 바라고 있다. 소련과 세계와의관계는 60년대 미국경찰과 빈민굴과의 관계와 비슷해서 불안감과 자기 방어 본능에 싸여있다. 소련지도자들에있어서 우리의 세계는 적대감에 가득찬 외계와 같은것이다. 그들이 국민들의 외국여행을 제한하고 외부방송을 교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소련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소련이 우리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된다.
외국민간기를 격추시킨데대해 소련이 사과하라고 요구하는것도 그들이 스스로의 과오를 인정하고 외국압력에 굴복하라고 요구하는것과 같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오류를 시인하고 외국인의 비판을 받아들이려면 자신에대한 안정감을 갖지않으면 안되는데 소련인들은 그런 안정감을 갖고있지 않다.
소련국경수비군의 무례한 몸수색을 경험한 사람이면 소련인들이 얼마나 자기들의 「국토안전」 에 과민해 있는지를 알수있다. 그들은 국토안전에 대한 그들의 편집증세같은 과민성이 과거 여러번 외침을 받은 역사적 경험으로 정당화될수 있다고 믿고있다.
그러나 그들의 과민성은 실용적인 필요의 선을 넘어선 것이다.
소련은 정확하게 그린 자기나라 지도를 출판하지않고 있다.
외국인이 그런 지도를 이용, 소련침략을 계획할까봐서인지 소도시나 강줄기·철로를 실제보다 조금씩 왜곡되게 그려놓고 있다.
소련은 모스크바올림픽때 설치했던 전화의 직접 다이얼시스팀을 대회가 끝난뒤 철거해 버렸다. 그대로두면 전화도청이 어렵기때문이다.
우리에게 이런 행동은 정신병적으로 보이지만 그런 통제에 수세대동안 익숙해온 소련인들은 이것이 정상적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이야말로 최근 모스크바의 거리에서 만난 일반 소련 시민들이 KAL기를 격추한 소련정부의 행위를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열쇠가 된다.
소련은 KAL기를 격추시킨데 대해 상당한 댓가를 외교면에서 지불하게될 것이다. 전세계의 반소세력은 이 사건으로 강화되었으며 모스크바가 관련된 협상은 어려워지고 성공가능성은 줄어 들었다.
소련은 요즘 역선전활동을 통해 이런 피해를 줄이려하고 있지만 잘 되지않을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건으로 소련지도자들은 국내적으로 이익을 얻었음을 알아야 된다.
오랫동안 소련 지도층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인위적으로 과장해서 그것으로 방대하고 다양한 그들의 국민을 엄격히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소련은 얼마전부터 「레이건」행정부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비용이 많이드는 군비경쟁을 강요하지 않을까 우려해왔다. 소련 지도자들 대부분이 이제는 군비경쟁이 불가피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 KAL기사건은 그런 군비경쟁이 수반하게될 생활수준에 미칠 희생으로 정당화하는데 이용될수 있다고 소련지도자들은 믿고 있을 것이다.
소련은 「레이건」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해 온건한 대응조처를 한데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리라고 보는 워싱턴의 일부 견해는 소련을 잘못 읽은 소치다.
이와같은 천진스러운 가설에 따르면 소련은 미국의 거친 용어를 도외시하고 「레이건」행정부가 어떤 실질적인 보복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객관적 현실」을 알아차릴것이라는것이다.
사실 소련 입장에서 볼때 소련을 국제적으로 소외시키고 모욕을 퍼붓는 행위는 곡물협정폐기나 기타 상거래의 중단보다 큰뜻을 가질것이다. 소련은 이미 그런 제재를 체험했기때문에 그런조치는 견딜수 있음을 알고있다. 그러나 소련이 세계에서 둘째가는 초강대국임을 전지구상에서 과시하려는 소련역사의 현단계에 있어서 모욕과 고립을 당하는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반격의 길을 찾으려 할것이다.
이번 사건은 앞으로 어떤 조짐을 나타낼까? 소련은 전세계에서 깡패처럼 행동할까? 이번 사건으로 우리는 소련에 대해 알지 못하던 측면을 발견했을까?
이질문에 대한 해답은 『노』다.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요소는 KAL기를 격추한 소련인들의 결정은 예견된 것이라는 점이다.
KAL기가 처한 상황-미국첩보기와의 중복비행사실, 2시간동안 여객기가 소련의 극비 군사기지상공으로 비행한사실등을 미리 알았다면 소련전문가들은 거의 모두 그런상황에서 소련도 KAL기를 격추시킬것이라고 예견했을 것이다.
앞으로 수년는 소련이 취할법한 행위중에는 우리를 경악케할 일들이 많을 것이다.
폴란드사태가 악화하면 소련은 폴란드를 침공할것이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명예롭게」 철수할 방안을 제기하더라도 그들은 그대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이 자살적인 행동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세력권밖에서는 큰 모험을 하지 않을것이다.
그들은 핵전쟁의 위협을 앞세워 서방세계를 정복하려 들지 않을것이고 자기들의 이익을 도모할수 있을 경우 핵금협상을 비롯한 주요협상에 관심을 가질것이다. <로버트·카이저기> 【워싱턴포스트=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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