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혼자 사는 남자 배성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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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30대 중반의 남성이 있다. 광고 카피라이터이며 아내와 네 살된 딸을 두고 있는 그는 일상이 지루하고, 답답하고 또 한편 숨막히기도 한다. 그래서 '독립'을 선언해 따로 나와 살기로 한다. 그런데 목적은 딴 데 있다. 미모의 젊은 여성과 바람이 난 것. 이사 간 날, 둘은 새 집에서 짜릿한 로맨스를 즐기려 한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그들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해프닝과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면서 그는 결코 혼자 있을 수 없게 된다.

창작극 전용극장 '씨어터 디 아더'의 개관작인 '혼자 사는 남자 배성우'(서동수 작.연출)의 전반적인 줄거리다. 언뜻 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은 이 연극은 실제로 흥미롭다. 대사는 내 얘기처럼 사실적이며, 머리 싸매고 연구할 만큼 해석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전혀 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는 싸구려도 아니다. 연극을 다 보고 나면 한번쯤 자신의 부부 생활을 돌이켜보게끔 하는 여지를 남긴다. 그런데 객석은 텅 비어있다. 이렇게 대중적 코드로 무장했음에도 관객이 찾지 않는 이유는 뭘까.

겉으론 부실한 마케팅이 원인일 게다. 그러나 본질적으론 이런 작품을 바라보는 전반적인 연극계의 시선이 흥행의 발목을 잡는다. "너무 뻔한 것 아니야" "TV 드라마와 다를 게 뭐야"라며 헐뜯곤 한다. "연극적인 깊이가 없다"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 얘기가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연극에 깊이와 실험성만을 요구하는 것 역시 난센스다. 연극계 주류의 시각이 이렇다 보니 평론가들의 평가도 인색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언론 매체에 노출되기도 힘들다. 재미있게 만들수록 점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이상한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한국 영화가 지금처럼 르네상스를 이루게 된 데에는 김기덕.홍상수 같은 작가주의 감독 이상으로 스크린 대중화와 웰메이드(well-made) 상품에 앞장선 강우석.강제규 감독의 공이 컸다. 예술 분야가 온전히 모양을 갖추기 위해선 작품성과 대중성이란 두 날개가 함께 펼쳐져야 한다.

연극계가 살아나기 위해선 꾸벅꾸벅 졸고 나와 '명작'이라고 폼을 잡기보다 낄낄거리곤 재미있다고 말하는 솔직함이 필요하다. 02-742-1602.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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