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 있는 책읽기] 생각을 뒤집으니 다른 세상이 보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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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그런데 이 내기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하느님'을 '알라신'으로 바꾸어도 논증은 똑같은 힘을 갖는다. 이슬람교도 이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개념이나 주장은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쓰임새가 달라지면 의미가 바뀔 수 있다. 어떤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느냐에 따라 의미의 풀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밤을 켜는 아이'(레이 브래드베리 글, 국민서관)는 이런 생각의 물구나무서기를 다룬 책이다. 밤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밤이면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고 부모가 없을 때는 온 집안의 불을 다 켜두어야 안심이었다. 어느 날 그 아이에게 까만 드레스를 입은 상냥한 모습의 '어둠'이 찾아온다. '어둠'은 아이와 함께 현관 불을 끄고 '밤'에게 인사를 시켜준다. "잘 봐. 스위치를 내린다고 꼭 불이 꺼지는 건 아냐! 스위치로 밤을 켜는 거야. 똑같은 스위치로 말이야! 네가 스위치로 밤을 켜면 귀뚜라미 소리도 켜는 거야! 별도 켜는 거야!" 밤을 켜는 법을 발견한 아이에게 이제 스위치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밤을 좋아하게 됐다.

레이 브래드베리는 반전이 갖는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그림도 반전에 일조한다. 돌려가면서 보도록 그려진 장면들은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보라고 권한다. 어떤 개념이나 주장을 반전시키는 기술은 토론이나 글쓰기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낱말을 다르게 배열하거나 그 낱말의 해석을 뒤집어보면 전혀 새로운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세상을 여러 각도로 바라보는 것, 철학적 글쓰기의 즐거움이다.

김지은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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