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간의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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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크렘린 석」이라는 말도 있다. 속이 캄캄하기로 이를데 없는 사람을 말한다.
소련은 KAL기 격추를 시인하는데 꼭 여섯밤 여섯낮이 걸렸다.
사실 그들의 시인은 아주 불투명한 어투의 변명일뿐이다.
그들은 KAL기의 「비행을 중지시켰다」고 했을뿐이다. 「미사일 발사」 나「격추」사실은 거기 나타나 있지 않다.
그래도 6일의 소련정부 성명에는 「무고한 탑승객들의 죽음에 유감을 표시하고 그들의 유족및 친지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 고 하는 매우 정중한 표현도 나와 있다.
그들이 어떻게 「유감」을 표시하고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는지」 우리로선 알수 없다.
늦게나마 입에 발린 소리를 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카멜레온처럼 변해온 엿새동안의 소련의 반응추이도 아주 재미있다.
1일새벽 사건직후 서방신문들이 요란한 재1보를 보도할때 소련의 보도기관들은 『한국비행기 한대 실종』 이란 짧은 기사를 실었다.
다음날 서방신문들의 KAL기격추 비난보도가 1면머리를 장식하는동안 소련의 프라우다는 『미확인 비행기가 영공을' 침범했으며 착륙을 거부했기때문에 요격했다』는 기사를 외신면 아래쪽에 아주 짧게 취급했다.
그날 타스통신으로 발표한 최초의 구체적 성명도 나왔다. 「한미확인 비행기」가 영공을 침범해 경고사격을 가했으며, 이 항공기는 「동해쪽으로 사라졌다」 하는 발표였다. 그 성명에는 「KAL기」 란 지적이 없었다.
3일 타스는 두번째 성명을 발표했다. 그때 처음 한국항공기 KAL기가 거론됐고, 그 비행기는 미국을 도와 반소 도발에 나선 것이라고 지적됐다.
5일에 가서야 프라우다는 「여객기의 추락」과 「많은 생명의 희생」을 보도했다. 그러나 그때도 물론 소련정부가 공식입장을 밝힌 건 아니었다. 방공군참모장 「세미온·로마노프」중장이 대역이었다.
6일의 소련정부 성명이 나오기까지는 그런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정부성명에서도 세가지가 왜곡되고 있다. KAL기의 격추결정은 정당한 것이며, 소련의 조종사들은 그게 민간항공기라는걸 몰랐으며, 그 비행기는 운항등을 끄고 신호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물적증거는 그런 소련의 주장이 전부 「거짓」 이며 「부당」 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73년 이스라엘이 리비아기를 격추했을때 사실이 즉각 공개되었던것과 비하면 천양의 차가 있다.
그때 안보리에서 소련대표가 거품을 물고 악을 썼던 것도 기억난다. 「공산체제」란 것이 어떤 것인가를 이해하는 하나의 척도로 삼을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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