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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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 속담에 『알기는 7월 귀뚜라미』라는 말이 있다. 음력7월이면 벌써 귀뚜라미는 가을을 알린다는 뜻이다.
이 부산한 세파속에서도 귀뚜라미만은 여전히 때묻지 않은 소리로 자연의 순항을 노래하고 있다. 『하잘 것 없는 저 귀뚜라미지만 울음소리만은 우리 마음을 흔들어 주누나』사보의 시구.
요즘 아침 저녁으로 소슬한 바람속에 묻어오는 귀뚜라미 소리는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도회지의 탁음 속에서 모처럼 듣는 청음이 신선하고, 숨가쁜 세상사 속에서 그 초연함이 돋보인다.
귀뚜라미 소리는 앞날개를 비빌 때 나는 소리다. 앞날개엔 종류에 따라 50내지 2백인개의 이빨같은 것이 돋아 있어 그것이 서로 엇갈리면 그처럼 맑은 소리가 난다.
이 소리는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서가이기도 하다. 미물이라도 노래소리만은 어쩌면 그렇게 영롱하고 아름다운지 조물주의 조화에 절로 실소짓게 된다.
소리 흉내를 잘 내지 못하는 서양사람들은 그 귀뚜라미 소리를 따서 귀뚜라미를「크리키트」라고 했다. 어원은 「크리커」. 귀뚜라미소리가 어떻게 『크리커…』로 들리는지, 소리도 듣기 나름인가.
하긴 의음(기음)이 발달한 우리 말로도 그 멜러디는 옮기기 어렵다.
그러나 동양의 시객들은 귀뚜라미 소리를 『절절』로 표현하고 있다. 애절한 심정을 나타낸 말이다. 자연을 받아들이는 감성이 서양사람보다는 훨씬 정적이고 센티멘털하다.
영어로는 귀뚜라미가 우는 것을 「첩」(chirp)이라고 한다. 「절절」보다는 드라이한 쪽이다. 「운다」는 서정적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노래한다」는 숙사적 표현이다.
그러나 동양사람들이라고 센티멘털한 것만은 아니다. 중국사람들에게 「요반봉」 (투실솔) 이라는 놀이가 있다. 귀뚜라미 끼리 싸움을 불여 돈내기를 하는 노름이다.
하지만 당시인 백거역의「촌야」와 같은 심성은 아마 서양말로는 쉽게 옮겨 놓을 수 없을것같다.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밤, 『홀로 문을 나서 둘을 바라보니/달은 밝은데 메밀꽃이 눈처럼 희네』(독출문전망야전 월명교화여설).
한번 그 광경을 상상만으로 라도 그려보라. 청초하고 담백한 삶의 모습이 때로는 그와 같은 감동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 지상엔 무려 1천5백여종의 귀뚜라미가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13종이나 있다. 초목이귀한 도회지의 콘크리트 정글 속에 그래도 귀뚜라미라도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긴 임립한 아파트의 고층에도 그런 소리가 들릴지 궁금하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삶이 메마를수록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에도 마음이 끌리는 것은 사람의 상정인가.
『두어라, 제 비록 미물이나 무인동방에서 뜻 알기는 저 뿐인가 하노라』(고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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