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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파문…보수·진보 두 논객 무릎 맞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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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영(성균관대 정치학)·김호기(연세대 사회학) 교수. 보수와 진보학계의 대표로 나온 45세 동갑내기는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 각자의 성역을 깨트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정현 기자]

강정구 교수의 친북 발언과 그에 대한 사법처리를 놓고 우리 사회는 또 이념 정쟁(政爭)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벌써 한 달째다. 아무런 결실도 없는 '소모적 난쟁(亂爭)'이다. 최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절반가량은 "강 교수 사태에 관심 없음"(46%)이 드러났다. 진보와 보수 학계의 45세 동갑내기 중견 학자인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김일영(성균관대 정치학) 교수가 머리를 맞댔다.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어보자는 취지다. 강치원 교수(강원대 사학과.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가 사회를 봤다. 대담자들은 "우리 정치.학문.언론이 모두 소모적 논쟁의 공범"이라며 "웃을 수밖에 없는 사태였다"고 입을 모았다.

▶강치원(사회):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맥아더 동상 철거""6.25는 통일전쟁" 등 강 교수의 주장에 국민 대다수인 80% 이상이 "말이 안 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신 구속에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구속 수사"(34%) "불구속 수사"(31%) "학문에 맡겨야"(33%)가 고른 비율로 나왔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김일영:국민 생각은 합리적인 것 같다. 강 교수 주장에 찬성하진 않지만 굳이 구속까지 원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구속 수사'와 '불구속 수사'를 합치면 '수사하자'는 대답이 65%다. 수사를 할 것인가, 학문에 맡길 것인가로 나누면 65%와 33%가 된다. 내 생각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문적 토론의 장에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한 보수단체가 강 교수를 경찰에 고발한 상태였다. 따라서 경찰은 수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예 처음부터 고발을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김호기:자기 견해를 밝힌 일로 사법적 구속까지 가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다. 학계 내에서 토론한 다음 사법적 판단을 물어도 늦지 않다. 주목해야 할 조사 결과는 이 문제에 국민의 47%가 "관심 없다"고 답한 점이다. 무의식 속에는 관심도가 더 낮을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 재선거를 겨냥해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념논쟁을 이용한 것 같다.

▶김일영:형사 고발이 됐으니 사법적 절차를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법적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비화시킨 것이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이다. 천정배 장관의 지휘권 행사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다"가 64%다.

▶사회:학문적 해결이 최선이고 그 다음이 사법적 판단이라는 점에 두 분은 공감했다. 그렇다면 사법적 판단을 기다려야 할 시점에 지휘권을 발동함으로써 문제를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시킨 것이 문제였다고 봐야 할까.

▶김호기:천 장관은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밟은 것이다. 일방적으로 검찰에 맡겨놓으면 구속 수사가 예견되던 상황이었다. 만약 구속을 했다면 더 심각한 이념 분쟁이 초래되지 않았을까.

▶김일영:가정법은 사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와 정반대의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은 물론 적법하다. 그러나 입법취지로 봐서 정당하지는 않았다.

▶김호기:소모적 이념논쟁을 얘기하자면 여론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언론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신문이 사설에서 다뤘고 많은 국민이 영향을 받았다.

▶김일영:신문보다 TV 영향이 더 클 것이다. 서로 다른 성향의 매체 간 영향력의 상쇄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국민이 어느 매체 하나의 영향만 받는 것은 아니다.

▶사회: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의 이념 성향에 변화가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2년반 만에 중도가 늘어나고, 진보는 많이 줄었으며, 보수는 조금 줄어든 것으로 나왔다.

▶김일영:현 정부가 뭔가 성과를 내지 못한 데 따른 실망감이 큰 것 같다. 진보에서 이탈한 이들이 중도로 이동했다. 그들이 보수로 가지는 않기 때문에 보수의 진폭은 적다.

▶김호기:우리나라 정치권에 대한 지지 구도는 쌍봉 낙타형이다. 진보와 보수에 대한 명확한 지지구도가 있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 사이에 중도 항목을 넣느냐 빼느냐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에서 차이가 난다. 이번 조사에서 20~40대 초반이 진보 지지를 철회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사회:이념 성향의 변화를 분석하는 점에서 두 분의 생각이 비슷한데, 정당 지지도 변화는 어떻게 보나.

▶김호기:열린우리당의 열세가 뚜렷하다. 4.15총선 이후 1년반 동안 중도적 개혁정당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성장동력을 찾아내면서 사회 양극화를 해결해야하는 두 과제를 풀지 못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의 부진에 따른 반사이익을 본 측면이 강하다. 보수적 개혁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지지 정당 없다"가 37%나 된다는 것이다.

▶김일영:열린우리당의 지지가 대폭 하락한 원인은 두 가지다. 고용.양극화 같은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호남.충청 등의 지역기반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지지를 합한 숫자(20%)가 이념성향조사에서 진보 지지 21%와 유사하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합한 숫자(37%)가 보수성향 36%와 비슷하며, 무당파층의 숫자(37%)가 중도성향 40%에 근접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회:강 교수 사태를 정치권과 언론이 이용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은 무슨 뜻인가.

▶김호기:세계화.정보화 시대에도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서로 다른 대안을 내놓고 경쟁하는 이념논쟁은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이념논쟁이 왜곡된 형태로 증폭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언론이 확대하고 이를 정당이 받아 공방전을 벌이면 또 언론이 이를 중계하는 식이다. 강 교수 문제에 대해 국민의 46%가 관심이 없음에도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들어 놓고 있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여기엔 좌우의 구별이 없다.

▶김일영: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이 문제다. 학계도 반성해야 한다. 강 교수를 보호하려는 학자들은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지만'이란 전제를 단다. 그렇다면 "당신 왜 자꾸 그러느냐, 그것은 진보를 망치는 행위"라고 비판해야 할 것 아닌가. 국가보안법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있는 보수학계도 마찬가지다. "학문적으로 인용도 되지 않는 내용이다. 학계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구속하지 말라"는 반응이 보수 쪽에서도 나왔으면 좋았겠다.

▶김호기:손호철 교수는 중앙일보 기고에서 진보학계의 자성을 촉구하며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진보학계의 내부 비판이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동의한다. 진보학계는 아직 한쪽 팔을 묶고 보수학계와 대결하는 상황이다. 공안당국과 보수언론이 핏발 선 눈으로 달려드는데 어떻게 강 교수를 비판하겠는가. 그걸 용기라고 할 수 있을까. 국가보안법이 먼저 폐지되어야 한다.

▶김일영:박효종 교수는 중앙일보 기고에서 보수학계의 자성을 촉구하며 '언제까지 자유주의를 얘기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것인가'를 물었다. 맞는 말이다. 국가보안법 개정이든 폐지든 보수학계도 이 문제를 가지고 보다 진지하게 내부토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진보학계도 '민족의 이름으로'북한을 감싸고 돌지만 말아야 한다. 결국 보수와 진보 양쪽이 서로 자기 벽을 깨고 나오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김호기:보수 성향 지식인들은 미국 비판을 못한다. 진보 쪽은 북한 인권 비판을 안 한다. 족쇄다. 그러곤 쌍방을 비난만 한다. 각각 성역 깨트리기를 해야 한다.

▶김일영:언론도 그렇다. 보수 언론은 왜 하나같이 강 교수를 구속하라고 하는지, 언론자유를 얘기하면서 입을 막아야 한다는 것인가.

▶김호기:공론장에서 토론을 통해 합의에 도달해야 하는데 우리의 공론장인 언론은 오히려 편 가르기를 조장한다.

▶김일영:진보와 보수 모두 전가의 보도가 있다. 보수 쪽은 국가보안법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요즘은 진보 쪽에도 전가의 보도가 생겼다. '과거사 원죄론'이다. 일만 터지면 '나는 당신이 일제나 유신시대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식이다. 이러면 대화하지 말자는 것이다. 생산적 대화를 위해 양측 다 전가의 보도는 골방에 모셔둬야 한다.

▶김호기:언론은 이념의 빗장을 좀 풀어야 한다. 좌파나 극우라고 매도하는 것은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더 이상 반사이익에 기대지 말고 21세기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헤쳐나갈 대안 경쟁에 나서야 한다.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배타적 보수와 배타적 진보의 목소리를 줄이고 포용적 보수와 포용적 진보의 역할이 늘어나야 한다.

김일영 교수 (성균관대 정치학과)
김호기 교수 (연세대 사회학과)
사회=강치원 교수 (강원대 사학과)

정리=배영대 기자 <balance@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