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가 있는 아침 ] - 깊은 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깊은 물 - 도종환 (1954~ )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이 저녁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에 쫓기는 그대는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 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는가

굽이 많은 이 세상의 시냇가 여울을


당신은 얼마나 깊은 물인가. 당신의 물에는 술잔 하나, 종이배 하나 뜨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당신과 나, 이렇게 분열되고 고통스러운 게 아닌가. 부디 당신의 가슴속에는 깊은 강물이 흐르기를. 그 강물에 큰 배가 뜨고, 그 배가 바다로 흘러가기를. 그 배를 타고 모든 이들이 평화롭기를.

정호승<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